기업들 돈줄 막혀 아우성인데 … 産銀 정책금융마저 끊길판
"美·유럽은 마중나와 투자지원"
韓국책은행은 제 역할 못하고
정치권 눈치보기만 급급
대기업마저 자금 조달 어려워
산업판도 바꿀 혁신 끊길 위기
◆ 표류하는 정책현안 ◆
공격적인 투자가 절실한 재계에서는 정책금융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전 세계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지금 시장을 선점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정책금융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정책금융 기관들의 대출 여력이 줄어들면서 대기업들은 '플랜B' 자금 조달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10일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은 기업이 투자한다고 하면 '팬티 바람으로 마중 나온다'는 말까지 있다"면서 "국내 국책은행들은 갓끈이나 고쳐 매며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급한 지원책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조건을 따진다는 불만이다. 그는 이어 "지금 벽돌 한 장만 지원해줘도 우리 기업이 토대를 잘 다지면 나중에 건물 한 채로 돌아오는 효과가 날 것"이라며 "이런 효과를 노리기 위해 KDB산업은행이 발 벗고 뛰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공급망이 완전히 뒤바뀌는 지금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한데 산은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 태도에는 아쉬움이 있다"며 "경기 악화로 기업들 돈줄이 죄다 마르는 판인데, 기존 지원 틀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전기차로 호실적을 거두는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외한 다른 재계 그룹 모두 자금 융통이 쉽지 않다"며 "한국전력공사가 채권 시장에서 돈을 빨아들였고 고금리에 은행 대출도 부담"이라고 하소연했다.
재계에서는 정책금융기관이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육성하기보다 정치권 눈치를 본다는 불만이 높아진 상황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수출해서 돈을 벌겠다는 기업을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대기업 특혜라거나 특정 기업, 지역 지원이라는 식으로 비판이 가해지는 것을 보면 황당하다"고 했다. 산업과 경제에 있어서만큼은 효율과 채산성을 기준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정치 논리로 인해 오히려 대기업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미국이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특별법(칩스법), 유럽이 도입한 핵심광물원자재법(CRMA) 등은 모두 자국에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기업 유치를 위한 지원을 담고 있다. 한국은 최근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설비 투자를 늘리고, 올해는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도입해 세액공제율을 최대 28%까지 끌어올렸다.
한 주요 기업 인사는 "각국이 기존 세계무역기구(WTO) 무역질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국에 산업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바이오 등 모든 주요 산업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IRA에 대한 대응이 늦어 정부가 크게 비판받은 뒤 그나마 나아졌지만, 여전히 지원의 양과 질 모두 아쉽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에서도 이러한 재계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기업설명회(IR) 때 해외 투자자들이 대기업 여신 비중을 물어본다"면서 "비중이 높을수록 테일 리스크(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현실화하면 큰 충격을 몰고 오는 리스크)가 크다며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빈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산은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의 대출이기도 하다.
정책금융기관들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현재 금융기관별로 특정 기업에 허용된 대출한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을 비롯해 국내 기업이 전통 제조업에서 고도화 산업으로 주력 업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시설 투자 등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미 대출한도를 최대한 끌어 썼다는 의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기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가능할 텐데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축 차원에서 정책금융 지원을 받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송민근 기자 /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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