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러 침공·北도발로 日재무장화 박차…핵 없는 평화 소망과 상충"
해외 순방에서는 "일꾼" 면모…국내에서는 '의욕 없는 정치인'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앞서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0명'에 선정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인터뷰를 통해 성장 배경부터 정책, 다가오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9일(현지시간) 전문이 공개된 타임 인터뷰는 총리 관저에서 진행됐다. 일본 총리 관저는 1932년 이누카이 쓰요시 당시 총리가 암살된 이후로 '귀신 출몰설'의 무대가 된 곳이다.
기시다 총리는 "오래된 건물이라 가끔 소리는 들리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나는 귀신을 만난 적이 없다"고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핵무기 없는 평화 소원하면서도 일본 재무장에 박차 가하는 기시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잊을 수 없는 영혼들이 있다. 바로 히로시마에서 원자력 폭탄 투하로 숨진 여러 친척들이다. 그는 고향에서 할머니 무릎에 앉아 끔찍한 경험담을 들었다며 "히로시마 주민들이 겪은 참화는 내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졌다"고 말했다.
타임에 따르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17만 명에 이른다. 기시다 총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주요 원동력이 됐다"며 이 목표가 최우선 순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핵무기 폐지 국제 운동(ICANW)의 일원으로 2017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세쓰코 설로우는 타임에 "나는 그(기시다 총리)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기시다 내각이 추진 중인 군사력 증강 정책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재무장이 기시다 총리의 목표와 상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2027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세계 3위 규모 수준의 국방예산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타임은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북한의 미사일 도발,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 등이 있다고 짚었다. 매체는 역대 일본 지도자들이 국제적 제재에 동참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기시다는 민첩하게 미국 주도의 제재에 합류했다고 논평했다.
매체는 미 바이든 행정부 역시 "주요 위협은 중국에서 온다"고 말한 고노 다로 전 외무·방위상의 시각에 동의한다며 안보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으로 기술 이전을 막도록 기시다 정권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타임은 같은 우파 자민당 소속의 매파 아베 신조 전 총리도 군사력 증강을 오랫동안 선전해 왔지만 상대적으로 비둘기파인 기시다 내각에서 큰 반발 없이 안보 개혁이 시행됐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기존 평화주의 헌법을 유지하며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 대한 비평가들의 내부 비판과 더불어 일본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향후 과제로 전망됐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19~21일 G7의 의장으로서 히로시마에서 정상회의를 주최한다. 히로시마 G7은 그의 "평생의 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타임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강력한 민주국가들과 함께 히로시마의 비극적 역사를 활용해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위협에 대항하고자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참관국(옵서버) 정상 자격으로 초청됐다.
인터뷰에서 기시다 총리는 히로시마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동아시아가 될 수 있다"고 긴장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3월 직접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부차 등을 방문했다.
◇'의욕 없는 정치인', 지지율은 반등했지만 해결 과제 산적
기시다 총리의 성격에 대한 서술도 있었다. 취임 후 16차례 이상 순방을 돈 기시다에 대해 타임은 "자신이 엄청난 일꾼임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일본 내에서는 '의욕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불린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조부와 아버지 모두가 정치인인 세습 정치가라는 점도 덧붙였다. 하지만 정치가문이라고 처음부터 기시다 총리가 정계에서 이력을 쌓은 것은 아니다. 첫 직장은 은행이었으며 1993년 처음 정계에 입문해 여러 보직을 거친 후 5년간 최장수 외무상으로 일했다.
총리 취임 후 지지율은 아베 전 총리의 국장, 측근 스캔들 등으로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지난 4월 지방선거 및 중·참의원 보궐선거에서는 주요 의석을 확보하며 선방했다. 선거 유세 과정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효과와 함께 이후 지지율은 50% 이상으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정책 동력은 확보했지만 해결할 과제도 많다. 타임은 일본이 세계에서 출생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이며 저성장, 심각한 고령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꼬집었다.
타임에 따르면 일본 국민은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미국 국민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평균 40% 더 적게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궁극적으로 미국보다 생산성이 30%나 낮다.
기시다 총리의 목표는 이런 일본을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 등을 통해 현대화하고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최근 일본 정부는 자국 내 최초 카지노 건설 및 핵심 물류 동맥인 신토메이 고속도로 전용 자율 주행 차선을 승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정책은 투자자들의 반발심만 불러일으켰다.
여성과 노인의 일자리 창출 및 고용 확대도 당면 과제이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기시다 정부는 2030년까지 대기업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는 방침이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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