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세대 간 상생을 위한 연대
청년·유소년에 돌아갈 몫 적고
투표로 권익 지키기도 힘들어
이럴땐 세대 내 연대도 중요
경쟁승자의 동년배 위한 양보
사회 A가 있다. 100명 중 65세 이상 노년이 5명, 40~64세 중년이 22명, 20~39세 청년이 37명, 19세 이하 유소년이 36명이다. 피라미드형 인구구조다. 장유유서가 사회규범으로 수용되고,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속담이 통하는 사회다. 1990년 한국 사회였다.
사회 B에는 100명 중 노년이 16명, 중년이 40명, 청년이 27명, 유소년이 17명이다. 항아리형 인구구조다. 노년 인구가 약간 늘었지만 유소년 인구가 많이 줄고, 일하는 연령층이 많아 부양 부담이 적은 사회다. 2020년 한국 사회였다.
사회 C에는 100명 중 노년이 40명, 중년이 32명, 청년이 14명, 유소년이 12명이다. 역피라미드형 인구구조다. 물 마실 순서를 나이 많은 순으로 정하면 청년과 유소년은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한다. 물도 생산이 필요하다면 일할 사람이 줄어 100명분을 마련하지 못할 수 있다. 나이 많은 세대부터 한껏 마시면 어린 세대에게 돌아갈 몫이 없다. 2050년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물 마실 순서는 어떻게 정해질까? 1인 1표의 투표로 결정한다면 사회 C에서는 어떻게 될까? 노년 유권자층의 표심을 겨냥해 집권한 후 재선을 위해 노인 위주의 정책을 펴는 '실버 정치'는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들에서 이미 벌어졌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면서 최고속의 고령화가 예정된 한국 사회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더욱이 한국은 연령대별 투표율 차이가 크다. 54세 이하 투표율은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며, 특히 24세 이하는 40% 수준(2012~2018년)에 불과했다. 설령 청년이 100% 투표하고 노년 투표율이 40%로 낮아져도 사회 C에서는 청년보다 노년의 표심에 호소하는 게 유리하다.
그러면 앞으로 미래세대의 권익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소수라고 이들을 도외시한다면 우리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지금도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걱정되는 세상인데, 이들에 대한 고려가 없으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할 것인가.
2005년 이전에 만 20세 이상이었다가 지금 만 18세 이상까지 낮춰진 투표권 나이를 더 낮춰야 할까? 국회에 미래세대를 대변할 청년 정치인의 입성을 늘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상임위원회 등을 운영해야 할까? 미래세대에게 영향을 줄 사안에 대해서는 사전 영향 평가와 공론화 과정을 의무화해야 할까? 나아가 그런 사안에 대해서는 미래세대의 의견이나 미래세대를 위한 의견에 가중치를 높게 줘야 할까? 이들이 기성세대보다 지구 생태계나 국가재정에 더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그럴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게 아닐까?
토머스 베리가 주창한 지구법학은 자연에 법적 주체의 권리를 부여한다. 2006년 미국 지방 조례가 자연의 법인격을 인정했고, 뉴질랜드는 왕거누이강의 후견인으로 마오리족을 지정했다. 인도 법원은 갠지스강과 히말라야산맥 빙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판결을 했다.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한 사회'는 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의 비전이다. 이러한 세대 간 상생을 위해서는 각 세대가 서로 배려하고 공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협력하는 세대 간 연대가 중요하며, 세대 내 연대도 필요하다. 노년 연대나 청년 연대를 만들어 세 대결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 상생을 위한 세대 내 연대란 가령 사회 C에서 노년 세대의 빈곤을 그 세대 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 즉 다음 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대신에 세대 내 재분배를 높이는 것이다. 교육, 취업, 재테크까지 이어진 경쟁의 상위 포식자들이 동년배를 위한 아량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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