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치는 사라지고 검찰이 국정 운영을 주도한 1년

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2023. 5. 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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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이 여당 친윤계 공부모임인 '국민공감' 강연에서 "지난 대선에서 주요 정당 후보들이 '0선'이 되는 비극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왜 '0선'끼리 경쟁하게 됐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얼마나 컸는지 돌아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이 됐다. 윤 대통령은 1년을 회고하며 "상상 못 했던 일이 지금 한일 간에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상 못했던 일'에 대한 평가에 관계없이 대통령의 말은 글자 그대로 '사실'이다. 윤 대통령 취임과 함께 상상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또 한 영역이 '정치의 실종'이다. 레이철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을 빗대어 패러디 한다면 작금의 현실은 <침묵의 정치> 시대임이 분명하다.

여야는 공히 국민들을 상심하게 만든다. 허구한 날 여당은 내분으로 날을 지새고 있다, 선출된 당 대표를 축출하고 유승민이나 안철수,나경원 같은 당 중진도 대통령의 호불호에 따라 '국정의 훼방꾼'들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들에 대한 평가에서 각자 선호도가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평생 정치를 '업'으로 쌓아온 사람들을 국민적 평가가 아닌 대통령 충성도로 재단하는 일들을 보는 일은 낯설었지만 이제 너무 익숙한 것이 되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


오십보백보인 것은 야당도 같다. 당 대표 사법리스크는 정국의 핵폭탄이 됐고, 돈봉투 사건에 가상화폐 논란이 더해지면서 싸늘한 여론을 마주하고 있다. 180석이나 되는 거대 정당이지만 검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차라리 의석 수 라도 적다면 대통령 패권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다고 '동정'이라도 살 수 있겠지만 그런 처지도 아니다. 당은 사분오열이고 국민들이 180명 가운데 이름 석 자를 알지 못하는 의원들이 수두룩하다. 180명이 지난 1년 간 '나는 무엇을 했는가'를 돌아보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고 느낄 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윤석열 정부는 검찰이 정치 전면을 주도하는 정권이다. 정국을 주도해야 할 국민의힘은 내홍과 내분으로 늘 리더십 부재 상태에 있다. 여당이 흔들릴 때마다 검찰이 등장하고 야당을 수사함으써 정국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일은 반복된다. '국민의힘은 검찰의 '비단주머니'에 의존한 무력한 정당이 됐다'라는 지적이 세간에서 나오는 이유다. 한일정상회담으로 논란이 일고, 여당 최고 위원 설화가 커지자 '돈봉투 수사'가 시작되었고, 태영호 논란이 불거지자 김남국 가상화폐 건이 터졌다.

류영주 기자


돈통투 수사와 김남국 가상화폐 건을 검찰의 정치 개입이라고 단정할 증거는 없다. 수사 할 사안이 생겨 수사한다는 것도 맞는 얘기다. 돈봉투 사건을 '야당 탄압'이라는 일방적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건을 옹호하기도 어렵다. 현 상태에서 범죄 단서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정치.윤리적으로 지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사건이 불거지는 시점이나 방식에서 검찰 역할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왜 하필 그 시점에 사건이 터져 나오는 것일까. 여당이 흔들리고 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검찰의 '비단주머니 봉인'이 해제된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홍준표 대구 시장은 "검찰 사무는 대통령 직무의 0.1%도 안된다"고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말인즉슨 국정을 '수사'로만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 간 한국정치는 사법 영역으로 종속되었다. 0.1%라던 수사가 정치를 삼켜버린 '검찰 리바이어던 시대'가 된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침묵의 정치> 시대가 내년 총선까지 쭉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이다. 검찰은 계속 야당을 수사할 거니까…

정치의 사법 종속을 걱정한다고 수사를 하지 말란 얘기가 아니다. 수사를 하더라도 정치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사회악을 일소한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레토릭에 불과하다. 수사로 사회악을 '한꺼번에 싹 다 제거하는 일(일소)'은 인류 누대에서 불가능하다. 지향점일 뿐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규모 주식폭락 사태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 당·정 협의회' 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여당은 증권범죄합수단을 전 정권이 없애려고 해 SG사태 같은 '주가조작 사건'이 늘었다고 주장한다. 마약수사를 제한해 마약 사범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증권시장 구조는 늘 범죄를 양산한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수사로 도려내야 할 부분인 것이지 수사로 그 범죄 원천을 근절할 수는 있다는 프레임은 미신과 같은 것이다. 정치와 수사는 병립돼야 하는 것이지 수사의 장막 뒤로 정치가 사라져선 안된다.

정치의 사법 종속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첫 원인은 검찰에 의존한 윤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년 간 야당을 상대한 건 국민의힘이 아니고 검찰이다. 윤 대통령은 '사기꾼 집단' 또는 '인권 운동가 행세'라고 빗대어 야당을 맹공하고 있다. 이 프레임 하에서는 오직 '수사'만이 작동하게끔 되어 있다. "트럼프가 여러 가지 혐의로 기소돼 있는데, 그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면 안 만날 건가"라는 이준석 전 대표의 발언(경향신문 5월 10일자,박주현의 색다른 인터뷰)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연합뉴스


역대 정권에서 '수사'만으로 흥한 정권은 없다. 과잉수사 정치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촛불혁명으로 취임한 문재인 정권도 '적폐 수사'로 절반의 국민을 포기했다. 적폐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청산해야 할 대상임은 분명하나, 동시에 그것은 '착각'을 수반한다. '적폐'라는 단어 앞에서 타협하기 어렵고 그 경계선을 넘지 않으면 오만과 독선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작용과 반작용은 기본적 물리 법칙일 뿐만아니라. 정치와 삶에서도 적용된다.

국민적 지지를 받는 수사라 해도 적폐청산은 영원하지 않은 법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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