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글씨로 쓴 마당의 사과나무 …‘일상’의 건축이 만든 사과나무집 [건축맛집]
모든 프로젝트 핵심은 ‘일상’…완공 후 삶 고민
방치돼 있던 수영장 부지가 아이들 뛰노는 놀이터로 변신한 맘껏하우스
하나의 건물 아닌 거대한 놀이공간 될 수 있도록
틈과 프레임 활용…물리적 실내 공간 최소화
설계 전 건축주 일상 담기 위한 설문지 작성도
건축주 아들이 쓴 마당 사과나무집 설문
전주 단독주택 ‘사과나무집’으로 탄생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건축은 ‘예술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짙은 분야 중 하나다. 이 같은 인식에 건축의 진입장벽이 높아지지 않도록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드는 건축을 지향하는 건축사사무소가 있다. ‘멋있다’, ‘아름답다’와 같은 형용사보다 사람들이 저마다 소중히 여기는 일상을 담은 동사에 초점을 맞춘 건축물을 짓는 ‘일상건축사사무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헌·최정인 소장이 이끄는 일상건축사사무소는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건축주의 일상’을 프로젝트 과정의 핵심으로 두고 있다. 최 소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건축이 대중들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하고 싶었다”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나라고 생각이 들면 접근이 쉽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건축사사무소 이름이 일상이었고, 모든 건축 과정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사무소를 운영하던 두 건축가가 전라북도 전주로 터를 옮기게 된 것도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최 소장은 “서울에서 사무실을 운영했을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그들의 일상을 나누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논현동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도 사무소에 그냥 들어와서 건축에 대해 물어보는 이가 없었다. 의식주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생활과 밀접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사사무소는 엄청나게 벽이 높은 곳이라고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지방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제 고향인 순천과 김 소장의 고향인 전주가 대안들이었다”며 “순천과 전주 중 여러 사람들과 더 많은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전주로 결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전주에서 선보인 건축물들 중 대표적인 게 ‘맘껏 하우스’다. 야외수영장으로 운영됐다가 나지로 방치돼 있던 전주시 덕진공원 부지가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야외 놀이터와 건축물로 이뤄진 이곳은 ‘하나의 건물로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일상건축사사무소의 생각이 반영됐다. 놀이기구를 여러 개 설치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사방팔방 뛰어놀 수 있는 거대한 놀이공간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틈과 프레임’을 활용했다. 프레임 구조를 적용해 여러 틈들을 만들고 아이들이 그러한 공간을 놀이공간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물리적으로 실내로 규정되는 공간은 최소화했다. 최 소장은 “틈과 프레임을 활용해 최소한의 공간감을 만들고 나머지 부분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다양한 쓰임으로 일상이 채워지길 원했다”고 말했다.
전주시와 유니세프가 공동으로 진행한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이었던 만큼 일상건축사사무소에게도 ‘공공건축’인 맘껏 하우스는 어느 프로젝트들보다도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다고 최 소장은 전했다. 그는 “공공건축물이다 보니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 경험할 수 있어 오롯이 전주 시민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점에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며 “건축 과정에서도 여러 부서와의 협의, 심의 등으로 처음 생각하고 계획했던 부분들이 흔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끝까지 원안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고민과 고뇌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맘껏 하우스는 현재 전주 시민들이 한번씩은 방문해본 일상적인 휴식 공간이 됐고, 일상건축사사무소 또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21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우수상, 202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일상건축사사무소가 이렇듯 공공건축 프로젝트 외에도 단독주택,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건축물을 짓기 전 묻는 질문들도 ‘일상’에 귀결된다. 최 소장은 “’당신(건축주)의 일상은 현재 어떻습니까?’, ‘당신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길 원합니까?’, ‘우리는 그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주고 싶은가?’를 가장 크게 생각한다”며 “물리적인 면적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일상적 요소가 가득한 건축물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건축주에게 설문지 작성이라는 숙제를 내주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최 소장은 “설문지를 통해 그들이 처음 생각했던 집에서의 나의 삶, 혹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공간을, 어떤 경험을 좋아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며 “설계진행 전 그들에게 생각의 시간을 주고 속마음을 보고 싶다는 목적에서 설문을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일상건축사사무소가 전주시에 지은 단독주택 ‘사과나무집’의 명칭도 건축주의 초등학생 아이가 설문지에 적은 요구사항에서 비롯됐다. 아이는 ‘집을 짓는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 적어달라’는 질문에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고싶다”고 적었다.
최 소장은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셋인 부부가 새롭게 집을 짓기 위해 저희를 찾았고 설문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당신이 이런 공간을 좋아했었구나’라며 결혼하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 했지만 모르고 있던 부분을 알게 돼서 서로 미안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사무소는 주택 설계를 위해 진행한 설문이지만 부부에게는 서로를 더 알아가는 시간을 줄 수 있게 돼 여러 측면에서 만족감이 높았다”고 귀띔했다.
사무소는 설문지 뿐만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 건축주와 ‘완공 후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최 소장은 “단순히 ‘이곳은 이것이 좋고, 저곳은 저것이 좋아’가 아니라, ‘이곳은 이건 좋을텐데 이건 참 불편할 거야’와 같이 실제 맞닥뜨리게 될 문제점, 불편한 점까지 생각하고 정리해 여러모로 건축물들에 건축주들의 이야기가 잘 묻어나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설계 과정에서 건축주와 사무소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최 소장은 “디자인의 부분은 최대한 저희의 생각을 믿고 따라와 주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거라 설득하지만 본인들의 생각을 일관되게 주장하시는 경우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정리해 반영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저희의 생각을 믿고 따라와 주신다”고 말했다.
일상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최 소장은 “금전적 이익 또는 프로젝트 완성도 둘 중 무엇이라도 하나는 우리에게 남아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며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프로젝트를 대하는 건축주의 간절함과 저희의 간절함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일상에 방점이 찍힌 일상건축사사무소가 그리는 청사진 또한 ‘일상’이다. 최 소장은 “일상건축사사무소는 건축이 어려운 담론을 떠나 개개인의 일상을 고유하고 그 일상을 건축에 담아내고자 한다”며 “각자의 일상이 그러하듯 각자의 건축 역시 그러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네 삶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며 “소위 삶의질을 평가하듯 이야기 되는 ‘평’ 개념의 물리적 수치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상적 요소들로 채워지기를 원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이 아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즐거움으로 이뤄진 건축을 지향한다”고 덧붙였다.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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