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임금 노동자 800만…“최저임금 적용범위 확대도 중요”[다시, 최저임금④]
한국에서 배달 노동자, 대리기사 등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일하는 ‘비임금 노동자’가 8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10일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비임금 노동자 수는 788만명가량이다. 이 중 30대 이하 비임금 노동자 수가 300만명을 웃돈다. 정보기술(IT) 발달, 근로기준법 규제를 피하려는 기업의 노무 전략 등에 따라 일을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노동시장의 변화는 최저임금 심의의 쟁점도 넓히고 있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지난달 13일 플랫폼노동희망찾기가 연 ‘최저임금 사각지대 플랫폼노동 구하기 프로젝트’ 기자회견에서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서 최저임금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 이제 최저임금 액수를 올리는 것뿐 아니라 최저임금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도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양대노총은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방안을 올해 최저임금 심의 테이블에 올리려 하고 있다.
잠자고 있는 ‘최저임금법 5조 3항’
1986년 최저임금법 제정 당시부터 수십년간 법전에서 잠자고 있는 조항이 있다. 바로 최저임금법 5조 3항이다. 도급제 노동자의 경우 노동시간 파악이 어려우므로 실적에 따라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에 따라 도급제 임금에 적용될 최저임금액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례는 법 제정 뒤 37년간 한 번도 없었다.
노동계가 사문화된 이 조항에 주목하는 것은 최저임금 보장을 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 때문이다. 이 조항을 활용하면 도급제 노동자처럼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 앱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배달 노동자가 건당 특정 금액 이상을 받도록 정하는 것이다.
영국 최저임금제는 사용자가 건당 또는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공정 보수(Fair Rate)’ 계산법을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딸기농장에서 일하는 앤디는 딸기 1㎏을 수확할 때마다 52펜스 이상의 보수를 보장받는다. 이 공정 보수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이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시간당 24㎏의 딸기를 수확한다. 이를 ‘1.2’로 나눠 시간당 작업량을 20㎏으로 보정한다. 작업속도가 더딘 신참 노동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 4월부터 적용된 영국 최저시급 10.42파운드를 보정한 시간당 작업량 20㎏으로 나눈 값(52펜스)이 공정 보수가 된다. 영국 정부는 최저임금을 설명하는 홈페이지에서 “앤디는 매일 농장에서 보낸 시간이 아니라 실제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영국 제도는 한국 최저임금법 5조 3항에 따른 법 적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임위 연구용역 “플랫폼 노동에 최저임금을”
한국에서도 이런 접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말 논란 끝에 일몰된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과로·과적·과속 운행이 잦은 화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화물차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화물 노동자 및 운수사업자가 받아야 할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했다. 이는 특수고용직인 화물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으로 여겨졌다.
대법원이 2007년 잠자고 있던 최저임금법 5조 3항에 주목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철도역 구내매점(옛 홍익매점)을 운영하는 노동자는 정확한 노동시간을 산출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이 조항에 따른 최저임금을 정한 뒤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자 2021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플랫폼 노동자의 생활실태를 통해 살펴본 최저임금 적용방안’ 보고서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생계보장은 필수적이며, 당연히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리즈 끝>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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