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살인이 왜 유기징역?”…대전 은행 강도살인 항소심 시작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승만(53)이 지난해 9월2일 오전 동부경찰서 앞에서 심경을 말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21년간 미제 사건이었던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의 항소심 재판이 시작됐다. 두 피고 모두 “나는 총을 쏘지 않았다”고 엇갈린 주장을 하는 가운데 항소심 재판부가 “강도살인인데도 유기징역을 내린 1심 판단이 법적으로 정당한지 따져볼 것”이라 예고해 2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대전고법 형사1부(재판장 송석봉)는 10일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속돼 1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이승만(53)과 이정학(52)의 항소심 첫 공판을 열었다. 총을 직접 쏜 주범으로 지목된 이승만은 이날 “총은 내가 아닌 이정학이 쐈다”며 “내가 쐈다는 물적 증거 없이 이정학의 진술만 있는 상황인데, 항소심에서는 이 부분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학 역시 “이승만은 내가 총을 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이 부분의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항소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1년 12월21일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충청지역본부 지하주차장에서 현금을 수송하던 김아무개(당시 45살·국민은행 용전동지점 출납과장)씨를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하고 3억원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경찰과 검찰은 이승만을 직접 총을 쏜 주범으로 지목했으나 1심 재판 내내 이승만은 이를 부인하며 “총은 이정학이 쐈다”고 주장했다. 그런 가운데 이승만은 1심 선고 직전 전북경찰청에 ‘전주 백선기 경사 살해·권총 탈취사건의 진범은 이정학이고, 이정학으로부터 권총을 건네받아 숨겨뒀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실제 경찰은 이승만이 지목한 울산의 한 여관방 천장에서 탈취된 백 경사의 권총을 찾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병역을 마치지 않아 총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이정학과 달리 이승만은 수색대대 군 복무를 마쳐 총기 사용이 익숙하고 실탄 사격 경험도 풍부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승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범 이정학에게는 “미필적 살인이고 범행 가담 정도가 이승만보다는 적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같은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양형은 다른 1심 판단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의문을 제기했다. 형사법상 강도살인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데, 이정학에게만 유기징역을 선고한 1심 결과가 맞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정학의 양형과 관련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법이 정한 형이 아닌 유기징역을 선고한 1심 판단이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으니, 검찰과 두 피고인 쪽은 관련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문제 제기로 이 사건 쟁점은 새 국면을 맞았다. 만약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의 양형이 위법하다 판단하면 “누가 총을 쐈느냐”와 상관없이 강도살인의 공범인 두 사람 모두 무기징역 이상을 선고받게 되기 때문이다. 진실공방을 할 실익이 거의 없게 되는 셈이다.

이 사건의 다음 항소심 재판은 다음 달 21일 열릴 예정이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