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게이단렌 주도 미래파트너십 기금에 4대그룹 참여하나
사실상 '4대그룹 동참 요구' 해석…재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냐"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임기창 기자 = 한일 경제단체가 양국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한일·일한 미래파트너십 기금'(이하 기금)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국내 4대 그룹의 참여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이날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젊은 인재 교류, 산업 협력에 관한 문제는 전경련 회원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 국민, 전 산업체, 전 경제계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에서 탈퇴한 삼성 등 4대 그룹의 기금 참여 여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전경련은 이날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기금을 통한 공동사업을 검토할 운영위와 자문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각각 10억원과 1억엔(약 10억원)을 출연해 기금 운용을 시작하고, 사업이 확대되면 양국 기업에 동참을 요청할 방침이다.
김 직무대행은 "어떤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한일 협력을 통해 양국의 산업, 경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라면 전경련 멤버가 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사실상 4대 그룹의 동참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기금 참여는 각 기업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전제했지만, 기금을 통한 한일 경제협력이 개별 기업이나 업종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김 직무대행은 "지난 한일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 때에도 전경련이 주도해서 재계회의를 열었지만 이는 전경련의 것이 아니고 국가 전체의 것이기 때문에 4대 그룹도 기꺼이 참석했다"며 "마찬가지로 기금의 모든 사업은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문이 닫혀있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양국 산업 협력의 주요 대상에 반도체 공급망 강화, 자원·에너지 안보 등 4대 그룹의 주력 분야가 포함된 터라 이들의 참여가 기금 사업의 위상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게 재계 안팎의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김 직무대행이 한발 앞서 나간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실에서도 관심을 가진 사안인 만큼 4대 그룹 입장에서도 전경련 복귀와 별개로 기금 참여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한일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기금의 출범을 언급하며 "한일 미래세대의 교류 확대를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한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조만간 4대 그룹도 기금 참여 등을 놓고 내부 검토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전경련에서 탈퇴한 만큼 전경련이 주도하는 기금 참여에 대한 불편함도 감지된다. 이에 따라 기금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도 상당한 고민을 거치며 서로 '눈치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4대 그룹 관계자는 "아직 기금 참여에 대해 전경련으로부터 어떤 요구나 요청을 받은 것은 없다"며 "(김 직무대행이) 원론적인 수준에서 답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나 주요 정상회담과 관련해 각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원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특정 단체가 운영하는 기금에 현금을 지원하는 것은 맥락이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기금 설립을 포함해 정부가 내놓은 일제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상황도 기업들이 선뜻 참여를 결정하기 어려운 요인이 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이 기금 참여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닐 것"이라며 "이들의 부담감을 줄이고 참여를 끌어내려면 명분을 좀 더 가다듬고 참여 형식과 절차의 투명성 등이 확실히 담보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전경련이 한일·한미 정상회담에 4대 그룹의 참여를 끌어낸 데 이어 기금 참여까지 성사시킨다면 재계에서 전경련의 위상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을 거쳐 4대 그룹과 스킨십을 점차 늘려 나가면 결과적으로 전경련 재가입을 타진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직무대행은 전날 연합뉴스TV에 출연해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4대 그룹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명분과 실질적인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런 조건이 갖춰지면 4대 그룹도 들어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직무대행은 "다음 주에 개혁안의 큰 방향을 기자간담회 형식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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