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주전이 없어요” 주민규가 말하는 울산의 독주 비결
한 시대를 풍미한 왕조는 공통점이 있다. 외부의 경쟁자와 맞서기 전에 그 자격을 다투는 건강한 내부 경쟁이다.
2010년대 프로축구 초유의 5연패를 달성했던 전북 현대 선수들이 공식경기를 앞둔 연습경기 활약으로 선발 여부가 갈렸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지난해 전북의 타이틀을 빼앗은 울산 현대도 올해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울산 공격수 주민규는 지난 9일 울산 문수축구장에서 기자와 만나 “누가 선발로 뛸지 나도 궁금하다”며 “경기 전날도 아닌 당일 베스트 일레븐이 나온다. 그 멤버도 매번 바뀌니 정해진 주전이 없는 팀이 바로 울산”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민규는 팀내 득점 1위(6골·1도움)를 달리는 자신을 예로 들었다. 토종 득점왕에 올랐던 2021년부터 2년간 K리그1 최다골을 자랑하는 그의 선발 출전 횟수는 올해 12경기 중 8회. 헝가리 국가대표 마틴 아담(선발 4경기 1골·2도움)과 출전 기회를 나누느라 생긴 일이다.
주민규는 “경쟁에 불만이 없다는 걸 우선 말하고 싶다”고 운을 뗀 뒤 “아담과 난 스타일도 강점도 다르다. 홍명보 감독님이 상대에 따라 칼 같이 판단해 경기에 나갈 순서를 정해준다. 경기 전날 조끼를 입으면 보통 주전을 확신한다. 우리는 그게 계속 바뀌니 예측도 어렵다. 항상 스스로 발전하고 계속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인지 요새 아담이 뛸 때 스크린 플레이나 슈팅의 동작을 눈여겨보고 있다. 타고난 힘도 있겠지만, 손이나 팔을 쓰는 게 남다르다. 이걸 몸에 익히면 나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울산의 치열한 내부 경쟁은 올해 선수단 전체의 출전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선수단 숫자는 12개 구단 최소인 31명인데, 최소 1경기라도 뛴 선수는 28명이다. 주전 골키퍼의 부상이나 징계가 아니면 기회를 받기 어려운 백업 골키퍼 2명을 빼면, 기용되지 않은 선수가 단 1명이라는 얘기다. 이 선수조차 다른 구단이라면 주전을 보장받을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선수니 그 치열함을 짐작할 만하다.
울산의 내부 경쟁이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 반발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민규는 “경기를 한 번도 못 뛴 선수들의 프로페셔널한 자세도 존중한다. 속상한 게 당연한 데 훈련이나 생활에서 단 한 번 티를 내지 않았다”며 “한 팀으로 뭉친다는 의식이 우리는 강하다”고 말했다.
울산의 한 관계자는 “선수 본연의 자세도 있겠지만 베테랑 선수들이 무게를 잡아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고 귀띔했다. 올시즌 벤치에서 뛰는 빈도가 부쩍 늘어난 이청용을 중심으로 박주영 플레잉코치 등이 경기를 못 뛰는 선수들을 챙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기 때문이다. 주민규는 “그런 말은 들었은데 아직 날 데려가주신 적은 없다”고 웃었다.
홍 감독은 선수들을 치열한 경쟁으로 밀어넣은 게 미안하면서도 잘 견뎌주는 게 고맙기 짝이 없다. 예년과 달리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가 시즌 초반이 아닌 중반부터 시작돼 출전 기회를 배분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것이 홍 감독의 설명이다. 홍 감독은 “여름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감독님이 걱정하실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울산은 감독님의 카리스마 아래 한 팀으로 뭉친 팀이다. 수비가 버텨주면 공격이 해결하고, 반대로 공격이 안 되면 수비가 돌파구를 마련한다. 하나로 뭉치는 응집력으로 올해도 팬들에게 결과를 안길 것”이라고 다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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