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서 5·18 배워요”…광주 교사들이 만든 ‘역사추리게임’
“광주시민은 숙연한 자세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해주어야 할 시점입니다. 당분간만이라도 도청 앞 ○○○를 정지시켜주시기 바랍니다.”
5·18민주화운동이 계엄군의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린 나흘 뒤인 1980년 5월30일 오후 11시40분 광주시청에는 이런 내용의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민원인이 정지해달라고 한 ○○○은 무엇일까. 문제에는 평면 삽화와 함께 ‘5·18 민주광장에서 옥색 구조물을 찾아보라’는 힌트도 주어졌다.
답은 ‘분수대’이다. 1971년 옛 전남도청 앞에 들어선 이 분수대는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들이 연단 삼아서 모여 항쟁 의지를 불태웠던 역사적 장소다.
답을 맞히면 자연스럽게 다음 문제로 이어진다. 5·18 당시 분수대에 모여 있는 시민들 사진이 제시되고 분수대에 올라 태극기를 들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묻는다. 5월 광주 참상을 판화로 세계에 알린 도미야마 다에코의 ‘시민의 힘’ 작품이 힌트로 제시됐다.
광주광역시 교사들이 올해 43주년을 맞는 5·18을 앞두고 제작한 역사추리형 게임인 <광장 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문제들이다. 이들은 옛 전남도청을 무대로 한 <광장 한 이야기> 외에 금남지하상가 만남의 광장을 배경으로 한 다른 버전인 <니들(바늘)>도 함께 만들었다.
두 게임의 방식은 같다. 문제가 제시되면 5·18 사적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답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문제마다 과거 기사나 동영상, 사진 등 힌트가 주어진다. 참가자들은 게임을 풀며 자연스럽게 5·18 역사와 그 의미 등에 대해 고민하고 배우게 된다. 이들 게임에 나오는 문제는 각각 15개다.
해당 게임은 지난 1일 처음 공개됐다. ‘오일팔닷컴’에 접속하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다. 초·중학교 학급 단체교육을 위해 제작됐지만 가족 단위나 소모임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안내서가 마련돼 있다.
게임은 기획부터 스토리 등을 광주 초·중학교 교사 20여명이 직접 참여해 제작했다. 광주실천교육교사모임 소속인 이들은 5·18 가치와 올바른 역사 인식 함양을 알리기 위해 고민하다 2020년 웹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후 수동적 학습으로는 학생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추리형식의 게임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든 게임은 5·18 민주묘지와 전일빌딩 등을 주제로 한 <보물편지>와 <스핀오프 미니게임>이다. 코로나19 확산 탓에 소규모 모임이나 온라인 참여 형태로 제작됐지만 학생·교사·학부모 등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어 현재까지 6만여명이 참여했다.
이번에 새로 제작·공개한 <광장 한 이야기>와 <니들>은 그간 2~3시간에 달하는 시간, 난이도 등 문제점을 개선하고 현장 위주 게임으로 재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10일 현재 670명이 이들 게임에 참여했다. 영어 버전으로도 제작돼 조만간 공개할 방침이다.
광주실천교육교사모임은 오는 13일 5·18민주광장 등 각 현장에서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게임은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참가는 무료다.
이해중 광주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빛고을초 교사)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 정서에 부담되지 않으면서 5·18에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게할지를 고민하다 추리형 게임을 만들었다”며 “이 게임이 학생들은 물론 국민의 5·18 역사의식 고취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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