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뚫고 통영 낙도 찾은 의료봉사단 ‘그린닥터스’

권기정 기자 2023. 5. 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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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일 비진도서 120명 무료 진료

80대 주민들 “최고의 어버이날 선물”

6일 그린닥터스가 경남 통영 비진도 경로당에 진료실을 설치하고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린닥터스 제공

“어버이날 선물로 부산서 진료왔습니다”

100~150㎜의 호우가 내린 지난 5일 경남 통영항 여객선터미널. 비진도행 여객선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자 여객선 운항이 중단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이 중에는 의료봉사재단 그린닥터스의 정근 이사장(63)과 이상로 온종합병원 부원장 일행도 있었다. 이들은 의료진을 눈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을 주민들 생각에 악천후지만 비진도행을 강행했다.

애초 50여 명이 의료봉사에 나서기로 했으나 우선 12명이 선발대로 비진도를 찾았다. 순간 최대풍속 20m의 바람과 높은 파도를 뚫고 비진도에 도착한 선발대는 내항리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왕진 활동에 나섰다. 추형윤 이장(73)의 안내를 받아 산 너머에 있는 외항리 주민들을 상대로 진료를 시작했다.

추 이장은 “외항리 사람 중에는 1년에 의사 얼굴 한번 못 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에 할머니들이 경로당에서 나와 의료진을 맞았다. 저마다 지병을 이야기했고, 문진을 마친 의료진은 영양제를 처방했다. 심장 초음파기기, 눈굴절 검사기기 등 힘들게 들고 온 장비도 큰 몫을 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한 남성은 앉은 채로 봉사단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5일 경남 통영 비진도에서 그린닥터스 소속 의료진이 안과 진료를 하고 있다. 그린닥터스 제공

비바람이 잦아든 6일에는 이현국 온종합병원 내과부장과 주연희 간호부장, 방선휘 휘림한방병원장, 물리치료사, 자원봉사자 등 42명이 추가로 합류해 총 54명의 봉사단이 꾸려졌다. 내항리 주민센터와 경로당에 가정의학과, 내과, 안과, 한의과, 초음파실 등 임시진료실이 설치됐다.

70~80대 어르신들에게 수액 처방과 함께 침술, 물리치료가 진행됐다. 이날 이 부장은 수 년 전 심장혈관 질환으로 자신에게 혈관 스텐트 시술을 받은 추형옥씨(84)를 만나 몸 상태를 살펴보고 위급 상황 대처 방법 등을 알려줬다.

봉사단은 비진도를 떠나면서 가정용 비상 의약품으로 구성된 의료키트 40개를 섬 주민에게 전달했다. 주민들은 “봉사단 덕분에 어버이날을 앞두고 최고의 효도선물을 받았다”며 감사했다.

비진도는 추경인 온종합병원 진단검사실장의 고향이다. 스텐트 시술을 받은 추형옥씨가 아버지이고, 추 이장이 삼촌이다. 비진도 보건소에 간호사 1명 만이 근무해 주민들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한다는 추 실장 이야기에 비진도행이 결정됐다.

그린닥터스는 최근 수년간 해외 봉사활동에 주력해 국내 활동은 다소 부족했었다. 그린닥터스는 국내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비진도를 올해 첫 봉사지역으로 택했다.

5~6일 경남 통영 비진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친 그린닥터스. 그린닥터스 제공

그린닥터스는 1997년 부산지역 의사들로 구성된 ‘백양의료봉사단’에서 시작했다. 2003년 개성공단 내 응급의료시설 지정을 앞두고 ‘재단법인 그린닥터스’로 법인화했다. 2005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개성공단에서 ‘남북협력병원’을 운영하면서 남북한 노동자 35만명을 무료 진료했다. 이 공로로 2019년 11월 경향신문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민족화해상’을 수상했다.

2015년부터는 해외로 눈을 돌려 네팔, 중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튀르키예 등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쳤다. 현재 회원은 의사 100여명, 간호사 1000여명이다. 전국의 초·중·고교와 대학에서 동아리 형태로 활동하는 봉사회원까지 합하면 1만명에 달한다.

그린닥터스는 올해 국내 오지를 돌며 무료 진료에 나설 계획이다. 오는 8월에는 경남 통영의 낙도인 매물도와 산청의 지리산 오지 마을인 삼장면에서 무료진료를 할 계획이다. 정근 이사장은 “올해는 초심으로 돌아가 국내 낙후 지역에서도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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