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밀어내고 칸 황금종려상 받은 이 영화

김은형 2023. 5. 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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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오디션을 위해 줄 선 남자들이 요청에 따라 표정을 싹싹 바꾼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를 외치면 모든 걸 내려보는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거만한 얼굴을 했다가 저가 브랜드 에이치앤엠을 외치면 세상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모델이자 인플루언서인 야야(샬비 딘)와 칼(해리스 디킨슨) 커플은 협찬으로 초호화 유람선을 타게 된다.

전작 <더 스퀘어> (2017)에서 고상한 예술가와 지식인의 위선을 신랄하게 꼬집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한층 더 과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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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영화 <슬픔의 삼각형>.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자, ‘발렌시아가’의 표정을 지어보세요. 이번엔 ‘에이치앤엠(H&M)’, 다시 발렌시아가, 에이치엔엠, 다시 발렌시아가…”

모델 오디션을 위해 줄 선 남자들이 요청에 따라 표정을 싹싹 바꾼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를 외치면 모든 걸 내려보는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거만한 얼굴을 했다가 저가 브랜드 에이치앤엠을 외치면 세상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잘생긴 남자들이 일렬로 서서 거만했다, 해맑았다를 반복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가격이 구매자의 표정과 사회적 위치까지 결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보여준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유력한 후보였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송강호, 아이유 주연의 <브로커>를 제치고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슬픔의 삼각형>이 17일 국내 개봉한다. 현대 계급사회 비판이라는 <기생충>과 같은 주제의식을 가지면서도 독한 유머와 마르크스∙레닌 철학까지 장착해 상황과 인물들을 극한까지 몰고 간다.

모델이자 인플루언서인 야야(샬비 딘)와 칼(해리스 디킨슨) 커플은 협찬으로 초호화 유람선을 타게 된다. 러시아, 영국 등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은 맘만 먹으면 3천억원짜리 이 배를 살 수 있다는 재력을 과시하며 “맑은 하늘을 보는데 돛이 지저분해 거슬린다” “모든 직원이 일을 중단하고 당장 함께 수영하자”는 떼쓰기 수준의 요구를 서슴지 않는다. 선장 주최 만찬 열리는 도중 파도로 배가 엉망이 되고, 해적의 공격까지 더해져 배는 반토막이 난다. 이렇게 야야 커플과 러시아 재벌 등 승선자와 직원 8명은 무인도에 당도한다.

전작 <더 스퀘어>(2017)에서 고상한 예술가와 지식인의 위선을 신랄하게 꼬집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한층 더 과격해졌다. 돔 페리뇽과 캐비어와 굴, 송로버섯 등 최고급 식재료의 향연이 벌어지던 만찬에서 참석자들은 뱃멀미를 견디지 못하고 분수처럼 구토한다. 수십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한 여성이 가까스로 방에 들어와 화장실에 앉아 위아래로 쏟아내다가 배가 흔들리며 쏟아진 토사물과 배설물 위를 굴러다니는 장면은 노골적으로 역겹고 웃기고 처량하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비싼 돈을 내는 사람, 공짜로 먹는 사람, 비위를 맞추며 팁을 바라는 사람,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가 난장판을 걸레질하는 사람 등 배 안에서 철저하고도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던 위계는 무인도에 도착하는 순간 180도 뒤집힌다. 식당도 아닌 화장실 청소 담당인 필리핀 노동자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이 캡틴이 된다. 보석과 롤렉스 시계가 무용지물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물고기를 잡고 불을 피울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비게일에게 얻어먹기 위해 구차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배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조롱하던 러시아 재벌은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자”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애비게일의 눈치를 살핀다.

감독은 자본주의 위계의 맨 꼭대기에 있는 자본가들에게 말 그대로 똥덩어리를 던지면서 신계급사회를 과격하게 조롱한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 방식이 참신하지도 정교하지도 못한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칸영화제 공개 때도 찬반이 엇갈렸고 <헤어질 결심>을 누르고 최고상을 받은 데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과 40대의 나이에 외스틀룬드 감독은 <더 스퀘어>에 이어 이 작품으로 두 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거장 중의 거장으로 기록됐다. ‘슬픔의 삼각형’은 미용업계의 용어로 얼굴을 찌푸릴 때 미간과 코 위쪽으로 생기는 삼각형 모양의 주름을 뜻한다고 한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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