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반찬’ 조기·명태·멸치로 본 밥상·바다·문화 변천사

도재기 기자 2023. 5. 1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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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조명치 해양문화 특별전’
한국인 밥상 위 조기·명태·멸치 문화사 조명
170여점 자료 생동감 있는 전시
기후변화, 해양생태계 오염 등 이슈도 환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조명치 해양문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멸치잡이 등 전통 어로 방식 죽방렴을 형상화한 전시장 전경 일부(왼쪽)와 특별전 포스터. 민속박물관제공

한국인들의 수산물 애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바다에서 나오는 웬만한 수산물은 다른 나라와 달리 거의 다 먹는다. ‘웰빙 음식’이란 인식 등으로 1인당 소비량이 세계 1위다. 연간 1인당 국내 식품소비량에서도 수산물 비중은 68.4%로 쌀과 육류를 제치고 가장 높다(2020년 기준). 밥상의 반찬이나 일품요리, 갖가지 술안주로도 즐겨 먹으니 당연하다.

특히 멸치 소비량은 세계 1위가 두드러지고, 명태는 수산물 수입 1위 국가인 한국의 수입량 중 늘 1등을 차지한다. 통째로 제사상까지 오르는 조기 사랑도 유별나 조기와 맛·모양이 비슷한 물고기를 아프리카에서까지 들여온다. 저 먼 옛날부터 밥상에서, 식당과 술집에서 다양한 모양과 맛으로 우리 곁을 지키는 게 조기와 명태, 멸치다.

조기·명태·멸치(조·명·치)가 한국인들에게 지닌 문화사적 의미를 다양한 자료와 영상·문헌 등을 통해 민속학적으로 풀어내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마련한 기획전 ‘조명치 해양문화 특별전’이다. 특별전은 ‘조명치’ 각각의 문화적·역사적 의미와 변천사를 중심으로 하되, 바다에서의 ‘조명치’ 잡기부터 가공과 유통·판매, 더 나아가 밥상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조명치’를 둘러싼 숱한 이야기들이 펄떡이는 조명치처럼 전시장에 풀어진 것이다.

1980년대 명태 잡이에 쓰였던 면사 그물(왼쪽)과 경매사 용품.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조명치를 비롯해 각종 어물을 팔던 시장 좌판의 모습과 1980년대 추자도 멸치 젓갈 통.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더욱이 재미나게 전시를 즐기다보면 이 시대의 묵직한 화두들을 슬며시 떠오르게 해 특별전의 가치와 의미를 더한다. 동해에서 더 이상 잡히지 않는 명태, 이제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조기, 점점 줄어드는 은빛 멸치 떼, 수산물 애호 1위 나라라면서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우리 어촌의 현실…. 급격한 기후변화, 바다와 해양생태계·어촌의 황폐화 문제, 나아가 미래의 밥상까지도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전시장은 시각과 청각, 후각 등 공감각을 일깨우는 170여점의 전시품으로 구성됐다. ‘조명치’를 활용한 일상적 밥상과 제의적 음식들은 물론 다양한 활용방식, <규합총서> <자산어보> 같은 옛 문헌들, 그물 같은 어업 도구와 용품들, 어시장과 어물전, 위판과 파시 등을 만난다.

무엇보다 선원, 위판장 경매사·시장 상인·조리사 등 조명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갖가지 이야기들도 선보인다. 개구리 소리와 비슷한 조기의 울음소리, 어물전 특유의 비린내 등이 전시에 힘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듯하다.

전시를 통해 ‘조명치’가 한국인 삶과 얼마나 밀접한지도 새삼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1764~1845)는 어류학 저술서 <난호어목지>에서 ‘나라 안에 흘러넘치는데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귀한 생선으로 여기니, 대개 물고기 중에서 가장 많고, 가장 맛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적어 옛 사람들의 조기 사랑을 보여준다.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은 유명한 <자산어보>의 첫 머리에 ‘석수어(조기)’를 놓을 정도로 당시 조기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명태는 잡는 시기와 방법, 크기, 건조 정도 등에 따라 이름이 60개에 이른다. ‘춘태, 추태, 망태, 조태, 노가리, 생태, 동태, 북어, 코다리, 황태….’ 그만큼 일상과 친숙하다는 의미다. 일본·중국·러시아 등에 조선은 ‘명태의 나라’로 불릴 정도였고, 명란젓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전파돼 일본 식탁을 장악했다. 한때 “나라에 넘쳐난다”(서유구)고 표현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잡히던 명태는 이제 더 이상 동해에서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멸치는 예나 지금이나 다양하게 활용되는 식탁의 보물이다. 큰 물고기와 같은 존재감은 없지만 젓갈, 액젓, 육수, 분말 등의 형태로 국·밥·반찬 등 수많은 음식에 슬며시 녹아들어 그 힘을 발휘한다.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은 ‘국, 젓갈, 말린 포, 고기잡이의 미끼, 각종 양념으로도 사용한다’고 언급해 당시에도 다양한 식재료였음을 알려준다.

오래전부터 한국인과 이렇게 가깝고 또 많으면서도 소중했던 ‘조명치’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우리 바다에 그 많던 ‘조명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앞으로 밥상에선 ‘조명치’를 만날 수 있을까. 전시는 이런 질문까지도 자연스럽게 던진다.

‘조명치 해양문화 특별전’의 전시장 전경 일부.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전시기획자인 김창일 학예사는 “특정 물고기들의 문화사를 이렇게 다루는 전시는 국내에서 사실상 처음”이라며 “처음 공개되는 명태 관련 영상, 바다에서 들리는 조기의 울음소리, 각종 자료 등으로 조명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의 삶과 문화를 살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섬 출신이기도 한 김 학예사는 그동안 동해·서해·남해 어촌에서 8년여를 연구자로 지냈다.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과 연구가 전시를 보다 흥미롭게 만든 셈이다.

김 학예사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제 조명치가 가득하던 바다를 그리워하는 실정”이라며 “조명치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밥상의 미래가 걸린 바다, 해양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전시이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8월15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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