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1심 유죄·공천 부적격’ 규정 삭제···‘이재명 방탄’에 갇힌 제1야당
‘중대 비리’ 모호, 자의적 해석 우려
일각선 조국 전 장관 총선 출마 거론
“당, 조국의 강 다시 빠진다” 비판도
더불어민주당이 뇌물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후보자를 내년 총선 부적격자 기준에서 삭제한 ‘22대 총선 공천 규칙’을 확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 등 ‘사법 리스크’가 있는 정치인의 출마 자격 논란을 원천 봉쇄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당 일각에서는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총선 출마가 거론됐다. 당이 애써 건너온 ‘조국의 강’에 다시 빠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8일 ‘22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선출 규정 특별당규’를 확정하면서 공천 부적격자 기준을 이전보다 대폭 완화했다. 민주당은 4년 전 21대 총선에서는 “뇌물, 성범죄 등 형사범 중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현재 재판을 계속 받고 있는 자와 음주운전, 병역기피 등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부적격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이번 공천 규칙 확정시 부적격 처리할 수 있는 대상에서 “뇌물, 성범죄 등 형사범 중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현재 재판을 계속 받고 있는 자”를 삭제했다. 대신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만 부적격 처리 대상으로 남겨둬 1심 유죄 판결을 받아도 공천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이번 당규 개정은 아무 관련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공직선거법 위반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으로 재판받고 있는 이 대표의 출마 자격 논란이 원천 차단될 수 있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노웅래, 기동민, 이수진(비례) 의원 등도 비슷한 기준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은 이날 “규정을 완화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민주당은 “부적격 심사 대상을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포괄적으로 규정해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자는 물론 부적격 사유에 따라 징계를 받은 자도 심사 대상이 되도록 더욱 강화했다”며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는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을 받고 있는 후보자’보다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밝혔다. 당 관계자는 “개정된 특별당규에 의하면 2심 재판을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수사 중이거나 기소된 사람들도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면 부적격 심사를 할 수 있다”며 “혼선을 줄이기 위한 문구 정리이며 부적격 심사 적용 기준을 더 확대한 것이다. 다른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규 개정으로 ‘중대한’ 비리의 기준이 모호해졌고 포괄적 규정으로 인해 자의적인 적용의 문제도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이번 개정으로 인해 이 대표가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분명하다. 당이 부적격자 기준을 간소화해놓고 규정 강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는 도덕성 기준 완화는 총선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한 수도권 의원은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면 안 된다”며 “꼼수를 쓰면 국민이 가만히 있겠나. 총선에서 큰 일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의원은 “기존 규정이 문제가 있어서 바꿨다기보다는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바꾼 위인설법처럼 보인다”며 “당이 풍비박산나서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잔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방탄 논란에 휘말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해 8월에도 부정부패 혐의를 받는 당직자의 직무 정지 요건을 ‘기소 시’에서 ‘1심에서 유죄 판결시’로 완화하려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혀 포기했다. 당시에도 이 대표의 대장동 수사를 염두에 둔 ‘방탄 개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당 일각에서는 자녀 입시 비리 등으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조 전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가 거론됐다. 민주당 공천 규정대로라면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조 전 장관도 부적격자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 최대 의견그룹 ‘더좋은미래’ 대표인 강훈식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조 전 장관의 총선 출마에 대해 “지도부가 논의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저희가 지금 이 자체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도 적절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지금처럼 야당 의원들이 수사 대상에 많이 오르고 무차별적 기소를 당하는 상황에서 그냥 다 (출마) 기회를 박탈하자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며 “공천권을 검찰이 가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을 정치권에 다시 소환하는 것은 당 혁신 방향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당이 가뜩이나 조국 문제로 사과하고 반성했는데, 조 전 장관 공천을 거론하면 총선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1월 조 전 장관에 대해 “잘못이 확인되면 작은 티끌도 책임져야 한다”며 “조국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앞서 조 전 장관은 지난달 20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앞으로 행보에 대해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고 재판이 끝나서 목에 칼이 풀리고 발목의 쇠사슬이 풀렸을 때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아직 저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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