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과 콜더, 전시 공간까지 재탄생시키다
이우환, ‘관계항’시리즈 조각과 드로잉
콜더, 움직이는 조각 ‘모빌’과 과슈화 선보여
주목을 받는 미술작품은 작품 자체는 물론, 작품이 놓인 전시 공간까지 거듭나게 한다. 평범한 공간에서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 같은 미묘한 변화, 파장을 불러일으켜 작품과 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작품과 공간의 관계는 관람객의 예술적 체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가들이 작품 배치·설치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국제갤러리에 동시에 마련된 이우환·알렉산더 콜더 개인전인 ‘Lee Ufan’과 ‘CALDER’는 작품과 공간의 변화상을 즐기고 느끼는 작품전이다. 현대미술 대표 작가인 이우환(86)과 현대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알렉산더 콜더(1898~1976)의 작품을 함께 만나는 드문 전시이기도 하다. 소수의 작품이 선보이지만 거장들의 작품세계를 더 이해하는 자리다.
이우환의 작품은 조각·드로잉이 출품됐다. 관람객의 공감각을 일깨우는 이우환 특유의 관조적이면서 사유적인 작품들이다. 조각은 대표 시리즈 ‘관계항(Relatum)’의 신·구작 등이다. ‘관계항’은 그가 1956년 일본으로 이주해 일본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친 전위적 미술운동 ‘모노하’를 주도하기 시작한 196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작업이다. 자연을 상징하는 큼직한 돌, 인공물·산업사회를 상징하는 강철판 등으로 구성된다.
가시적인 돌·철판의 만남, 둘의 관계가 빚어내는 비가시적인 긴장과 공명 등을 통해 인위와 자연, 정신과 물질 등을 둘러싼 사유를 유도한다. 이우환은 “돌은 지구보다 오래된 시간의 덩어리다. 돌에서 추출한 게 철판이다.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게 내 작품의 발상”이라 말했다.
돌들과 쇠사슬로 이뤄진 신작 ‘Relatum-The Kiss’는 의인화된 두 돌이 키스하려는 듯 묘한 접점을 만들면서 관람객에게 여러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Relatum-The Sound Cylinder’(1996·2023)는 새와 비·개울물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는 강철 원통, 기대어놓은 돌로 이뤄졌다. 인위적 원통과 자연의 돌·소리가 발생시키는 공간 속 울림을 느껴보는 작품이다. 돌과 텅 빈 캔버스가 마주 보는 설치작 ‘Relatum-Seem’(2009)도 있다. 드로잉은 그만의 독특한 작업방식의 점·선으로 구성된 4점으로 조각들과 일맥상통한다.
콜더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 작업으로 현대미술에 영향을 끼친 20세기 거장 조각가다.
콜더의 모빌은 기계공학과 회화를 공부한 독특한 바탕에서 나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초 철사로 구상적·입체적 조각 작업을 하던 것이 추상으로, 움직이는 조각(키네틱)으로 바뀐 변곡점은 피트 몬드리안을 만나면서부터다. 또 초기 작품은 전기모터 등으로 움직였으나 점차 발전해 작품이 놓인 공간 속 미세한 공기 흐름 등을 이용함으로써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게 됐다. 그의 움직이는 조각에 ‘모빌(mobile)’이라 이름을 붙인 이는 개념미술 선구자 마르셀 뒤샹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모빌과 함께 콜더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단초인 구아슈도 나왔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한 1940~1970년대 작품들이다.
원색의 크고 작은 금속판·철사로 이뤄진 모빌작품들은 허공에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과 면, 그로 인해 빚어지는 독특한 생동감이 두드러진다. 나아가 물리적·조각적 엄정함과 더불어 춤추는 듯 즐겁게 노니는 유희성이 압권이다. 작품이 놓인 공간을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Grand Piano, Red’(1946), ‘Guava’(1955), ‘London’(1962) 등을 통해 “모빌은 삶의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춤추는 한 편의 시”라는 콜더의 말을 음미하게 된다. 두 전시는 28일까지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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