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건’이 연 160㎞ 광속구 시대에 양현종·김광현이 보여준 ‘베테랑’의 품격
프로야구 영건들이 연 광속구 시대, 두 명의 베테랑이 보여준 투구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 봐, 형들 싸움이다.”
1988년생 동갑내기 라이벌 김광현(SSG)과 양현종(KIA)은 공통점이 많다. 이 둘의 이름 앞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 수식어가 나란히 붙는다. 오랜 기간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미국프로야구를 경험한 뒤 KBO리그로 복귀한 점도 비슷하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 김광현과 양현종은 여전히 각 팀의 든든한 선발 투수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지난 9일 8년 만에 성사된 김광현과 양현종의 선발 맞대결은 소문난 잔치다웠다. 이 둘은 서로를 의식하기라도 하는 듯 굳건한 투구를 선보였지만, 조금 더 빛난 이는 양현종이었다. 양현종은 이날 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 10탈삼진으로 팀의 3-0 완승을 이끌었다. 그가 8이닝을 소화하고 두 자릿수 탈삼진을 솎아낸 건 지난 2020시즌 이후 900여 일 만이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양현종이 보여준 최고의 투구가 마침 김광현을 상대로 나왔다.
김광현은 ‘명품 조연’의 역할을 다했다. 올 시즌 어깨 염증 부상으로 한동안 전력에서 이탈한 적이 있는 김광현은 마운드 위에서 자신의 투구에 만족하지 못해 답답함을 표출하는 일이 늘었을 만큼 초반 성적이 좋지 않다. 시즌 평균자책은 4.34까지 치솟았다. 김광현은 이날 4회 KIA 변우혁에게 투런포를 얻어맞기 전까지 무실점 경기를 치렀다. 볼넷을 내주며 타자와 어려운 승부를 겨루는 경우가 잦았지만, 꾸역꾸역 투구를 이어가며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6이닝 3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의 준수한 활약을 하고도 패전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승패가 갈리긴 했지만, 김광현과 양현종 모두 공 끝의 매서움 만큼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이 둘이 던지는 빠른 공의 구속은 140㎞ 초반대로 감소했다. 이날 경기에서 김광현의 직구 평균 시속은 141㎞, 양현종의 직구 평균 시속은 139㎞에 불과했다. 위력적인 빠른 공 대신 세월이 쌓이며 생긴 노련함이 돋보인 경기였다. 원하는 곳에 정확히 던졌고, 타자와의 수읽기에서도 앞서며 타격 타이밍을 흔들었다. 안우진(키움), 문동주(한화) 등 20대 초반 젊은 투수들이 연 시속 160㎞ 광속구 시대를 살아가는 베테랑들이 농익은 투구로 저력을 보인 것이다.
다승 공동 2위(161승)에 오른 양현종에게도 최근 젊은 투수들의 선전은 자극제가 된 모양이었다. 경기 뒤에 만난 양현종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김)광현이와는 항상 라이벌 관계로 언급됐다. 이제는 둘 다 나이가 들었고,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어서 라이벌보다는 ‘동반자’라고 생각한다”며 “30대 중반인 우리 또래 선수들이 분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로 부상 없이 오랫동안 함께 야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광주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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