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공작원, 유튜브 댓글로 지령’...檢, 전 민노총 간부 4명 국보법 위반 혐의 기소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3. 5. 10. 1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8~2020년 北 지령문 90건 확보
역대 국보법 위반 사건 중 최다 규모
전 민노총 국장 사무실서 확보한 암호키로 해독
北, 김정은 위원장을 ‘총회장님’으로 표기해 지령
청와대·군기지 등 주요 국가시설 자료 수집 명령도
검찰 “피의자들 진술 거부...공범 계속 수사”

민주노총 전직 간부 4명이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에 포섭돼 지하 조직을 구축하고, 북한의 지령을 이행하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북한 공작원에게 제일 먼저 포섭된 전 민노총 A국장 사무실에서 발견한 암호키로 4년 간 북한에서 보낸 지령문 90건을 해독해 이 같은 범죄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검찰이 확인한 북한 지령문은 역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중 최다 규모다.

북한은 청와대, 평택2함대 사령부, 평택 화력발전소, LNG 저장탱크 배치도 등 비밀자료 수집을 지령했고, A씨 사무실 컴퓨터에서 관련 동영상과 사진 자료가 발견됐다.

북한 공작원은 일반 유튜브 방송에 시청자로 참여해 사전 약속된 단어가 들어간 댓글로 피의자에게 지령을 내리거나, 북한 최고위층 관심사인 선진 말 양육 기술 자료 수집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10일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검사 정원두)는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A씨(52)와 전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B씨(48), 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위원장 C씨(54), 전 민주노총 산하 모 연맹 조직부장 D씨(51)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간첩·특수잠입·탈출·회합·통신·편의제공 등)로 구속기소했다.

이 가운데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에 제일 먼저 포섭된 A씨는 2017년 9월과 2018년 9월, 2019년 8월께 각각 캄보디아, 중국, 베트남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북한 공작원과 20여년간 접선·교류한 A씨는 ‘따뜻한 동지’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고 북한 공작원이 표현할 만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국가정보원, 경찰과 합동 수사를 통해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이들과 북한 문화교류국 사이에 오간 북한 지령문 90건, 보고문 24건을 확보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암호문 해독은 검찰이 민주노총 A씨 사무실에서 확보한 암호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 등은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아 민주노총 위원장 등 주요 간부 인선과 정책노선 수립에 개입하고 본부·산별·지역별 연맹의 주요 인물 포섭을 시도했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민주노총 핵심부서 책임자로 일한 A씨는 2018년 10월 민주노총 운영자 ID와 비밀번호를 북측에 건네 2019년 4월 ‘민노총 내부통신망을 잘 이용해 많은 참고가 되었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A씨는 또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 동향 수집 지시(2020년 5월)에 따라 계파별 동향과 후보자별 신원·소양 등을 보고(2020년 9월)했다. 아울러 ‘촛불민심을 반미, 반보수투쟁으로 적극 견인하기 위한 실천활동을 적극 벌이도록 선전홍보실과 대외협력실 관계자들을 부추겨 (중략) 대중 속에 폭로, 유포하라’는 지령(2019년 6월)엔 ‘대외협력실 통일국과 통일 사업을 매번 협의하고 있고 교육원·기획실 부서장들과 교육사업을 공식·비공식 협의하고 있다’고 보고(2022년 9월) 했다.

A씨 사무실 컴퓨터에선 평택 미군·오산 공군기지 등 군사시설·군용 장비 동영상과 사진자료가 발견됐다. 검찰은 청와대 등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 마비를 위한 자료 입수, 평택2함대 사령부, 평택 화력발전소, LNG 저장탱크 배치도 등 비밀자료 수집 지령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B씨는 2017년 9월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 지령을 받고, 이듬해 4월엔 강원지역 조직 결성에 대한 지령을 받아 실제 활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씨와 D씨는 2017년과 2019년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각각 북한 공작원들을 만난 혐의다.

이번 수사에서는 이전과 다른 북한의 새로운 공작 형태가 발견됐다. 공작금 전달에 사용할 대포폰 구입과 보안용 ’위챗‘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지령하고 북한 최고위층의 관심사인 말 양육 기술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사건과 무관한 일반 유튜브 동영상을 대북 연락 수단으로 활용했다. 지난해 8월 한 유튜브 동영상에 사전 약속된 특정 문자(토미홀, 오르막길)가 들어간 댓글을 달아 해외 접선 약속을 잡기도 했다.

북한은 남한내 지하 조직과 조직원의 호칭을 사기업 활동 형태로 위장해 은폐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문화교류국은 자신의 조직을 본사, 남한내 지하조직을 ’지사-팀‘으로 구분해 지령했는데 A씨는 지사장, B씨는 강원지사장, C씨는 A 지사장 밑에서 2팀장을 맡아 활동했다.

북한은 지령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총회장님’으로 표기하며 친북 분위기 형성, 국내 정치 이슈와 관련된 여론 조작, 이태원 참사 이후 여론 선동 활동 전개, 노동계 전민항쟁 준비를 위한 실행방안 마련, 반미ㆍ반일ㆍ반보수투쟁 전개, 국가정보원 해체 및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등을 지시했다. 2018년 12월 3일엔 새해와 1월 8일(김정은 생일)을 앞두고 ‘총회장님께 드리는 축전’을 요구했다.

지사장과 팀장으로 불린 A씨 등은 지하조직으로 새 인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이 지령한 5단계 절차인 ‘친교 관계 형성→사회 부조리에 대한 불만 촉발→사회주의 교양→비밀조직 참여 제안→적극적 투쟁 임무 부여’ 과정을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접 만날 때는 마치 영화 속 장면을 보는 듯한 지령으로 보안을 철저히 유지했다.

2019년 7월 10일자 지령문에는 ‘지사장은 약속 시간 5분 전에 약 속 장소 위치에서 대기하다가 정시에 손에 들고 있는 생수 물병을 마시는 동작을 실행하라’고 적혀 있다. 북측 공작원이 지사장의 동작을 확인한 뒤 7∼8m 거리에서 손에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손수건으로 두 세차례 닦는 동작을 하면 양측이 은밀히 접선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만약 미행이 포착되면 휴대전화로 ‘두통이 오는데 병원이 가겠다’고 알려주겠다며 지사장에게 미리 고지한 2차(예비) 장소로 갈 것을 지시했다. 통화가 어려운 상황일 경우 북측 공작원이 담배를 피워 물면 미행이 달렸다는 신호로 알고 지사장에게 자연스럽게 장소를 이탈하라는 강령도 전파했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기소한 4명은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북측에서 지령문에 따른 활동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정도로 확인되고 있고 있으나 정확한 액수는 지령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검찰은 “거대 노동단체 내부에 전현직 핵심간부들이 그 영향력을 이용해 북한 공작기관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며 동조세력을 확대하려다가 적발된 사건”이라면서 “공범에 대한 수사도 계속 진행해 노동 단체에 침투한 지하조직이 저지른 반국가적 범죄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10일 오전 수원지검 브리핑룸에서 박광현 전문공보관과 정원두 공공수사부장, 이재만 공공수사부 부부장검사, 한은지 검사(사진 왼쪽부터) 가 전 민노총 간부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홍구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