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천정부지 먹거리 물가… 동행식당을 더 많이 보고 싶은 이유
지난해부터 매섭게 오른 먹거리 물가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사는 60대 이모씨의 유일한 낙을 앗아갔다. 쪽방촌에 사는 이씨는 해 질 무렵 청계천을 걷고 동대문 인근의 식당에서 소고기콩나물국밥을 먹는 행복으로 그의 삶을 지탱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쯤 국밥 한 그릇 가격이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오르면서 식당에 가길 포기했다. “국밥에 소고기가 겨우 두 점 있거든요. 근데 이제 값이 올라서 사 먹을 엄두가 안 나요. 그것도 못 먹는 내가 참…” 제법 마른 몸의 이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이쯤부터 이씨는 하루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이씨는 아침에 라면을 끓여 면을 건져 먹는다. 점심엔 국물을 데워 밥을 말아 먹는다. 그리고 저녁은 굶는다고 했다. 라면 하나로 한 끼를 때우는 날이 잦아지자 그의 건강도 망가졌다. 이씨는 지난해 가을 무렵 중병에 걸려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최근 들어 다시 방문한 창신동에서 이씨를 볼 수 없었다. “이씨가 작년 10월쯤에 경기도로 이사 갔다. 이사 전 이씨가 아파서 몸이 많이 야위었다”고 이웃 주민이 그의 근황을 전했다.
매달 물가지수가 발표될 때면 먹거리를 걱정하던 이씨가 떠오른다. 장을 보지 않아 김치 한 통과 계란 세 알만 들어있던 그의 작은 냉장고도 머리에 맴돈다. 몇 달을 매일 라면만 먹으며 그가 어떤 생각을 품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작년 4월 5%에 육박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3%대로 내려왔지만, 먹거리 물가는 고공행진의 보폭을 오히려 더 넓히고 있다. 지난달 외식물가지수 상승률은 7.6%, 가공식품물가지수 상승률은 7.9%다.
밥값이 주는 부담이 무거우면 취약계층의 행복과 건강은 달아난다. 가계의 전체 소비에서 식료품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엥겔지수는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높아진다. 지난 2월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엥겔지수가 높아지면서 저소득층의 가계 부담이 증가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저소득층에 물가 상승은 가처분 소득의 감소를 의미한다.
일부 지방정부에선 대책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쪽방촌 인근 식당 중 자원을 받아 ‘동행식당’을 선정했다. 서울시에서 달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8000원짜리 식권 한 달 치를 나눠주면 주민들은 그 식권으로 동행식당에 가 8000원 이내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쪽방촌 주민들이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밥을 먹게 하자는 취지다. 쪽방촌 주민들 반응도 좋다. 폐지 줍는 노인을 취재하다 만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사는 60대 강모씨는 “그래도 동행식당이 생기고 하루 한 끼는 마음 놓고 먹는다”고 말했다. 동행식당은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첫 삽을 뜬 동행식당이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섣부르다. 서울의 쪽방촌에만 2400명가량이 사는데 44개의 동행식당이 충분할지 의문이다. 동행식당 주인들 사이에선 8000원 가격이 너무 낮다는 볼멘소리도 일부 들려온다. 외식물가가 껑충 뛰자 8000원 안으로 메뉴를 꾸릴 수 없어 동행식당에서 이탈하는 음식점도 있었다. 쪽방촌 주민 2400명을 넘어 서울시 기초생활수급자 29만명의 한 끼 문제를 생각하자니 관자놀이가 지끈하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동행식당은 앞으로의 사업을 지켜볼 만하다. 서울시는 식권의 값어치를 올리는 안을 곧 논의할 방침이다. 동행식당의 수익을 보장해 사업 이탈을 막으면서 물가상승을 고려한 한 끼를 쪽방촌 주민들에게 보장하기 위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8000원에 대한 쪽방촌 주민 및 동행식당 참여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식권 가격 인상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시가 조금 더 빨리 나섰다면 창신동 이씨는 그가 좋아하는 소고기콩나물국밥을 매일 먹었을까. 부질없는 가정보다도 급한 건 또 다른 소외계층의 행복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도 부산, 대전, 경기 수원시 등의 쪽방촌에서 누군가는 음식을 앞에 두고 한숨만 쉬고 있다. 중앙정부가 서울시의 동행식당에 동행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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