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디폴트 위험, 금융시장에 반영 시작…5월 중 부채한도 올려야

권성희 기자 2023. 5. 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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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의장 등 의회 지도부의 부채한도 협상이 9일(현지시간) 전전 없이 끝났다. 백악관과 의회 지도부는 오는 12일 다시 만나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하원의장 외에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바이든, 협상 위해 G7 불참할 수도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의회 지도부와 회담 뒤 부채한도 협상을 위해 오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그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여전히 전념하고 있다"면서도 "부채한도 협상이 의제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과 상·하원 지도부가 워싱턴 D.C.에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날이 5월 중에는 9일부터 17일까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의 부채한도 회담이 9일 열린 것도 이 일정에 맞춘 것이다.

따라서 이 기간 중에 부채한도 협상을 타결짓지 못하면 바이든 대통령이 19~21일 G7 정상회의 참석을 포기하고 미국 정부의 디풀트(채무불이행)를 피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다만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오는 25일에는 상원이 열리지 않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열려 부채한도 협상의 주체인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하원의장의 회담은 가능하다.

X-date, 6월 초~7월 말 사이
백악관이 5월 중에 부채한도 협상을 마무리하려는 이유는 다음달이 되면 미국 정부가 디폴트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주 부채한도가 증액되지 않으면 다음달 초에 세입이 바닥나고 국채 발행도 못해 미국 정부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채한도를 상향하지 않을 시 미국 정부가 디폴트를 맞게 되는 시기, 이른바 'X-date'(X-데이트)가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옐런 장관은 6월 초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세입과 세출 현황에 따라 6월 초에서 7월 말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JP모간은 미국 정부의 재정 여력이 오는 6월9일이면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옐런 장관이 조만간 오는 6월15일을 X-date로 공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이치뱅크는 X-date를 오는 7월 말로 예상하지만 6월 초부터 디폴트 리스크가 고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부채한도 상향 협상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바이든 "디폴트는 옵션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뒤 미국의 디폴트는 "선택사항이 아니다"며 "우리는 디폴트 위협을 테이블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회담 후 "나쁜 소식"은 매카시 하원의장이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을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시키자는 제안을 거부한 것이라며 반면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또 "좋은 소식"은 바이든 대통령이 모든 정부 부처에 대해 "빠르면 당장, 늦어도 내일부터 예산과 세출 내역을 분석해 어떤 부분에서 (지출 삭감을) 합의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백악관이 아무 조건 없이 부채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공화당의 요구대로 삭감할 지출이 있는지 검토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회담이 끝난 뒤 부채한도 증액을 위한 협상에서 "어떠한 새로운 움직임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정치 지도부가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협의 진전의 신호라고 덧붙였다.

공화당은 부채한도를 높이는 대신 정부의 예산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부채한도 법안을 2주일 전에 217 대 215로 통과시켰다.

임시 증액 뒤 본격 협상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6~7월 중에 디폴트 위험이 있는 만큼 일단 부채한도를 임시로 올린 뒤 정부 지출 삭감을 포함한 전면적인 협상은 시간을 두고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씨티그룹은 6월 중에 임시로 부채한도를 증액한 뒤 오는 9월 예산 협상이 시작될 때 전면적인 협상 타결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도 오는 7월 말이나 9월 말까지 쓸 수 있는 정도로 부채한도를 일단 증액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백악관과 매카시 하원의장 모두 이같은 부채한도 임시 증액을 반대하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공보 비서관은 이날 회의 전에 "의회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며 부채한도 상향을 촉구한 뒤 부채한도를 단기적으로 늘리는 것은 "우리 계획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매카시 하원의장도 임시로 부채한도를 늘린 뒤 가을에 진행하는 예산 협상과 연계해 본격적인 부채한도 증액을 논의하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안 된다"며 "우리는 표결 권한을 걷어차서는 안 된다. 지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美 디폴트 위험, 시장 반영 시작됐다
옐런 장관이 지난주 부채한도가 상향되지 않는 한 미국 정부의 지급 여력이 6월 초에 소진될 수 있다고 밝힌 후 국채시장은 미국 정부의 일시적 디폴트 위험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에 디폴트 위험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만기가 가장 짧은 국채의 수익률이 올라가게 된다. 현재로선 오는 6월 초중순에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수익률이 크게 올라가는 상승 왜곡이 나타나고 있다.

또 지난 8일 미국 정부는 오는 8월10일에 만기가 도래하는 570억달러 규모의 3개월물 국채를 5.14%에 매각했는데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는 2001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낙찰 수익률이다.

미국 정부의 디폴트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인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도 급등했다. 현재 미국의 CDS 프리미엄은 일부 신흥국보다 더 높아졌다.

다만 시장은 미국의 디폴트 위험이 임박하면 결국 백악관과 의회가 부채한도 협상을 타결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미국이 실제로 전면적인 디폴트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과 전반적인 채권시장 분위기는 지방은행들의 안정화 여부와 연준(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에 더 집중하면서 지금까지 미국의 디폴트 위험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라도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면 금융시장과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지급 의무 이행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면 국채 매도가 급증하면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것이란 지적이다.

또 건강보험과 연금 등 각종 사회보장 지출이 일시 중지되면서 서민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은 2011년에 부채한도 협상 타결이 늦어지면서 며칠간 일부 사회보장 지출을 중지한 적이 있으며 이에 따라 신용평가회사인 S&P는 미국 정부에 대해 트리플 A 신용등급을 박탈했다. 당시 미국 금융시장은 단기 급락하며 혼란을 겪었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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