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사랑한 30대…먹통 감응신호 건너다 참변
경추 등 다발성 골절과 머리 내 출혈
고장 난 신호버튼과 틀린 표지판
한참 기다리다 무단횡단
전주국제영화제를 보기 위해 전북 전주를 온 30대 청년이 교통사고로 경추 등 다발성 골절과 머리 내 출혈을 입었다. 횡단보도에서 고장 난 보행자 신호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던 이 청년은 결국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전주시의 무관심한 시설 관리가 사고의 원인으로 보인다.
사고를 당한 이은호(34)씨의 친누나인 이은영(49)씨는 10일 오전 전북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호를 지키라고 말한다'면 신호등을 제대로 만들어 주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지난 4월 30일 오전 7시 30분쯤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의 아중저수지 인근 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1t(톤) 트럭에 받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이씨는 경추 뼈와 발목, 왼쪽 팔, 쇄골이 부러졌으며 머리 안에서 출혈이 났다. 치아마저도 손상됐다.
이씨는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넜다. 보행자 신호버튼이 고장 나 한참을 기다려도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길 건너편에 한 노인이 무단횡단을 하는 것을 보고 따라 건넜다. 당시는 짙은 안개에 가시거리가 짧았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이씨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사랑해 올해로 7년째 전주를 찾았다. 이씨는 아중저수지의 아침 물안개와 함께 둘레길을 걷고 촬영하기 위해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그곳을 갔다.
사고의 원인은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된 보행자 신호버튼과 그 표지판에 있다. 전주를 사랑한 한 청년이 전주시의 무관심한 시설 관리로 인해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씨가 건넜던 횡단보도에는 두 개의 감응신호, 즉 보행자 신호버튼이 있다. 그가 눌렀던 '고장 난 보행자 신호버튼' 위에는 "버튼을 누르면 신호가 바뀝니다"라고 쓰인 잘못된 표지판이 있다. 이 고장 난 버튼에서 3m가량 떨어진 곳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 또 다른 보행자 신호버튼이 있다. 표지판이 없는 이 보행자 신호버튼이 외려 정상 작동한다.
친누나 이씨는 "고장 난 버튼을 왜 그대로 방치해 놓는 것이냐"며 "그 버튼 위의 표지판은 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놔둔 것이냐"고 물었다. 이어 "경찰에 물어봤으나 경찰은 '관할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직접 알아보라'고 했다"며 울분을 표했다.
또 이씨는 "직접 조사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을 때 지역 주민이 '그건 고장 난 버튼이야 잘 안돼. 여기 버튼으로 해야 해'라고 말했다"며 "주민들은 다 알고 계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후된 전주의 신호 등을 알리고 제2, 제3의 피해가 생기는 것을 막고자 한다"며 "전주시와 경찰청이 잘 공조해 전주 곳곳의 교통 문제점을 파헤치고 적극 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신호를 지키라'고 말한다면 신호등을 똑바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담보로 횡단보도를 건너게 된다"며 "한옥마을과 다양한 먹거리를 보유하고 있는 문화와 전통의 아름다운 전주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보다 안전한 교통시스템과 체계화된 사건 처리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수도권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또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해 신호등 관리를 소홀히 한 전주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취재가 시작되자 전주시는 고장 난 보행자 신호버튼을 철거하고 새것으로 교체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유지·보수 등 관리는 전주시의 몫"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접촉 불량으로 인해 버튼이 정상작동하지 않은 사실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이어 "표지판이 있는 신호버튼을 먼저, 없는 신호버튼을 나중에 설치했다"고 덧붙였다. 또 "전주시에서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며 "차후에 이런 일이 없도록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주시와 전북경찰청은 보행자 신호버튼을 점검하고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의 불필요한 시설은 모두 폐기할 예정이다. 또한 고장 신호가 발송되지 않는 구형 모델에는 '고장 시 연락 바랍니다' 등 안내 문구를 붙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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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CBS 송승민 기자 smso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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