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 우크라이나 국기, 러시아의 길목을 막다
파랗고 노란 우크라이나 국기 물결이 러시아 대사의 발걸음을 막아세웠다.
9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안드레예프 주 폴란드 러시아 대사는 이날 러시아의 전승절을 맞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소련군 2차대전 참전 기념관에 헌화할 계획이었다. 러시아는 1945년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서 항복을 받아낸 5월 9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그러나 안드레예프 대사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앞에 깔린 우크라이나 국기 수백개와 십자가 때문이었다. 십자가는 러시아에 의해 살해된 우크라이나 국민의 무덤을 상징했고, 일부 십자가 밑에는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의미로 가짜 피가 연출됐다. 부차, 이르핀, 마리우폴, 바흐무트 등 러시아가 폭격한 우크라이나 도시의 이름을 붙인 건물 모형도 있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유로마이단-바르샤바가 기획한 저항 활동이었다. 이를 조직한 빅토리아 포그레브니악은 “이번 설치는 러시아의 선전에 맞서 싸우고 진짜 실태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폭격을 당하고, 살해당하고, 강간당한다”며 “대사를 비롯해 러시아 외교관들이 기념관에 가기를 원한다면 상징적인 우크라이나인의 시신 위를 걸어가거나 (국기) 덤불을 통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로가 차단되고 폭탄과 공습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와중에, 안드레예프 대사가 붉은 카네이션 화환을 기념관 대신 우크라이나 국기들 앞에 내려놨다고 AP는 전했다. 시위대는 안드레예프 대사 일행을 둘러싸고 ‘러시아인’과 ‘파시스트’를 합친 “러시스트”를 외쳤다. 지난해 전승절에서도 이 자리에서 안드레예프 대사를 향해 붉은 액체가 뿌려진 적이 있다.
이 일로 러시아는 폴란드를 규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내 “폴란드가 대사의 방문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데도 헌화를 다하도록 보장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저항이 “2차대전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폴란드의 이중적인 정책을 보여준다. 나치 독일에 착취당하던 유럽을 구해준 우리(러시아)의 역할을 잊으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적절한 조치 없이 넘어가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했으며,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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