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그대'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려면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더 이상 타임슬립 드라마는 낯선 소재가 아니다.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과거에서 찾고 이를 통해 현재의 모든 것을 돌려놓는다는 스토리 역시 고전적인 스토리라인이 됐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중 '어쩌다 마주친, 그대', '구미호뎐 1938'이 타임슬립을 다루고 있다. 3분기에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너의 시간 속으로' 역시 타임슬립을 채택했다.
그중 KBS 월화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라가는 드라마다. 우연한 계기로 타임머신을 발견한 윤해준(김동욱)은 자신이 살해당한 미래를 보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문제를 실마리를 찾던 해준에게 우연한 계기로 백윤영(진기주)가 휘말린다. 현재의 시점에서 엄마를 잃었던 윤영은 과거로 돌아가 엄마 순애(서지혜)를 만나게 되고 엄마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타임슬립을 내세웠기 때문에 디테일이 더욱 중요하다. 세계관 내에서 타임슬립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와 가지는 한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져야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조금은 불친절하다. 아직은 많은 사건들이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 우연히 타임머신을 발견한 해준과 우연히 시간여행에 휘말린 윤영은 공교롭게도 모두 우정리에 얽힌 서사를 가지고 있다. 또 과거로 돌아가 엄마와 아빠 희섭(이원정)의 결합을 막는 윤영의 계획이 성공했을 때, 현재의 윤영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우정리 연쇄살인의 진범을 찾기 위한 추적은 계속되고 있지만, 세계관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전달이 이뤄지지 않아 뒷맛이 개운치 않은 느낌을 주고 있다.
당초 2023년 1월 방송될 예정이었던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여러 이유 탓에 5월로 연기됐다. 방송 날짜가 밀리며 수목드라마에서 월화드라마로 편성이 변경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동욱의 또다른 주연작인 tvN '이로운 사기'와 방송 시기가 일부 겹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출을 맡은 강수연 감독은 "불행한 우연처럼 된 것 같다"며 미안한 감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우연의 기운이 극 내부뿐만 아니라 극 자체에도 스며든 것이다.
겹치는 우연 탓에 난처한 상황에 놓였지만, 김동욱은 강렬한 연기로 '대상 배우'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에서 학교폭력 트라우마로 인해 연쇄살인마가 되어버린 황경민을 연기했던 김동욱은 이번에는 살인자를 쫓는 추적자가 됐다. 타인이 아닌 본인의 죽음을 막기 위한 추적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하고 냉철하다. 캐릭터 상으로는 '그 남자의 기억법' 이후 두 번째 앵커 역할이다. 방송국에서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묵직하고 정확한 딕션의 내레이션이 이를 대체한다. 또한 때때로 따뜻하고 능청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과거로 돌아간 진기주는 엄마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했다. 그러나 자신의 고용주였던 고미숙(김혜은)과 엄마의 얽힌 과거를 알게 되자 엄마의 미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의 드라마 속 모녀관계가 엄마의 내리사랑을 강조하고 있다면,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딸의 치사랑을 중심으로 관계의 소중함을 짚어주고 있다. 단순히 옆에서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진기주의 모습은 뭉클한 감정을 선사한다.
첫 회 4.5%로 시작한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줄곧 4% 초반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눈에 띄는 이탈은 없지만 새로운 시청자를 끌어당길 요소 역시 부족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반등의 여지는 남아있다. 우정리 연쇄 살인의 증거는 고미숙을 향하고 있지만 너무 과하게 향한 탓에 새로운 반전이 등장할 확률이 높다. 고미숙은 진범이 아닌 공범 혹은 교사범일 확률이 높다. 이밖에도 타임머신을 개발한 인물과 해준에게 타임머신을 준 이유,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해준과 윤영의 러브라인 등 시청률 상승의 기폭제가 될 장치들은 남아있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사건의 얼개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 여행 전 미숙의 소설 원고에서 봤던 등장인물의 특징과 우정리 연쇄 살인 사건의 첫 피해자 주영(정가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윤영은 실종된 주영을 찾는 해준에게 "우리가 여기서 만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윤영의 말처럼 이 모든 사건은 하나로 이어지며 큰 줄기를 형성할 것이다. 다만, 아직은 사건과 사건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희미해 많은 것이 그저 우연처럼 보인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수 많은 우연이 어떤 연결고리를 통해 운명으로 완성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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