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채굴에 추가 세금 추진하는 미국, 그 속내는?
가상자산 채굴업체들이 잇따라 파산을 알려오던 지난겨울, CNN의 런던지국 스타 기자인 안나 스튜어트가 스웨덴에서도 북극권 근처에 올라 붙어있는 도시 보덴을 방문했다. 하얗게 얼어붙은 북구의 도시에서, 그 새하얀 눈과 얼음을 모두 녹여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가상자산 채굴장비가 뜨겁게 돌아가고 있었다. 컴퓨터 12만 대가 24시간 맹렬히 연산을 수행하며, 아직 '묻혀 있는' 비트코인을 캐낸다.
수력발전소가 자리하고 있는 보덴 시에서 먼저 자기들을 초청했다는 게 채굴로 유명한 전문업체 하이브 블록체인의 변이었다. 안 그래도 에너지 전송 과정에서 손실이 있게 마련인데 발전소 옆에 딱 붙어 전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고, 채굴장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처리하기도 용이하다. 보덴의 수력발전소도 돈을 벌고, 하이브 블록체인은 (아마도) 더 막대한 돈을 벌어갈 구조다.
왜 중요한데? - 가상자산 채굴에 쓰이는 어마어마한 전력
무슨 상황인데 - '코인 채굴'에 대가를!
이달 초, 백악관의 홈페이지에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가 글을 하나 올렸다. "가상자산 채굴자들이 남들에게 떠넘기는 비용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도발적인 제목이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DAME tax(Digital Asset Mining Energy excise tax), 즉, '가상자산 채굴연료세'의 적용 방법과 명분, 근거를 제시하는 글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지난 3월 9일 올해 예산과 이를 위한 세수 계획을 발표한 그린북을 통해 '가상자산 채굴연료세'를 신설해 일정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가상자산 채굴자들이 쓰는 전기료의 30%를 추가로 세금으로 매기겠다는 계획이다. 한 마디로 "너희들이 전기 쓰는 만큼 전기료만 낼 게 아니라 세금도 더 내라"는 것이다.
왜 쓰는 만큼의 전기료를 부담하는 것 외에 그 비용의 30%를 세금으로 내는 추가 책임이 필요한가. 그래야 "가상자산 채굴자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에 좀 더 책임을 지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의 단언이다.
좀 더 설명하면 - 부정적 외부 효과
가상자산 채굴에 이렇게 많은 전기가 필요한 건 그 규모 때문만이 아니라는 게 미국 정부의 시각이다. 특정한 몇몇 채굴장에서 한꺼번에 엄청난 전력을 쓰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감안해야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땅덩이가 좁고 전력망이 촘촘하게 밀집된 나라 사람으로서는 딱 감이 오기 힘든 생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고 인구가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전력망도 국토에 균일하게 촘촘히 깔려있지 않다. 전력을 공급하는 회사도 우리처럼 한국전력이 하나 딱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제 웬만해서 겪지 않는 정전을 곳곳에서 걸핏하면 겪는 나라다.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에 대규모로 채굴장을 꾸리는 가상자산 채굴자들이 한꺼번에 많은 전기를 썼다 말았다 하면 그 지역의 전력 수급에 실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간신히 전기를 끌어다 쓰면서 트레일러 같은 데 사는 인근의 저소득층 가정 같으면 더욱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도 이런 상황을 명시하고 있다.)
채굴자들이 갑자기 휙 떠나버리면 더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역시 가상자산 채굴자들의 특성상 아예 팀이 옮겨 다니며 채굴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전력공급자 입장에서 '우리 동네에 가상자산 채굴장이 들어섰으니 어쩔 수 없군' 하고 전력장비를 보강했다가 채굴자들이 떠나버리면 헛된 비용을 쓰게 된 셈이고 환경오염도 더해진다는 논리다.
설사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는 "기존에 존재하는 친환경 전력을 끌어다 쓰는 경우"라고 한정 지어 언급하긴 했다.) 한 군데서 집중적으로 전기를 많이 끌어다 쓰는 현상 자체는 똑같기 때문에, 결국 인근에서 화석연료 발전에 계속 의존하게 될 가능성을 키운다고 보고 있다.
한 걸음 더 - '채굴연료세' 추진하겠다는 백악관
여기에 대해서 정부가 개별소비세를 유지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환경세'다. 모든 자동차가 뿜어내는 배기가스, 그로 인해 생기는 환경오염이란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 내는 세금이란 얘기다. (여기서 "엇 그럼 전기차는?" 하게 된다. 그렇다. 환경세란 명분이기 때문에, 배기가스를 내뿜지 않아 친환경차로 분류되는 전기차는 개별소비세를 300만 원까지 면제해 주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 - 당장은 아니라도 규제는 꼭
그러나 미국 정부가 이만큼 가상 자산 채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관점을 만드는 경제자문위원회는 중국을 비롯한 9개 나라가 가상자산 채굴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명시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들이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각주를 달았다. 경제주체들의 자유를 (원래는…)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나라로서, '채굴 금지'까지는 안 하겠지만 대놓고 징벌적 과세를 비롯해 강한 규제에 대한 의지는 잔뜩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가상자산 채굴로 인해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환경 부담이 가중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미국 정부의 속내에는 탈정부, 탈중앙적인 가상자산에 대한 강력한 컨트롤을 모든 각도에서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가상자산이 '자산'이지 '화폐'로 기능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이제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이 자산의 투기성에 울고 웃은 투자자들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이긴 하다. 양적완화 중단 이후 가상자산들의 가치부터 고꾸라졌고, 테라루나 사태나 FTX 사태 같은 대형 사기 건들의 전모가 밝은 대낮에 드러나면서 수년간 우리가 눈멀어 있었다는 부끄러움도 커졌다. 채굴업체들의 파산도 속출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권애리 기자ailee17@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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