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외이사는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기업의 사외이사(社外理事)는 국가로 치면 국회, 그중에서도 야당(野黨)에 비유될 수 있다.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과 그 집행기관인 행정부는 무엇인가에 의해 마땅히 견제되어야 하고 그 임무를 맡는 곳이 국회다. 권력을 낳은 여당은 권력기관과 한 몸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결국 야당이야말로 핵심적인 견제 수단이다. 야당이 없거나 있어도 실효성이 없는 나라를 우리는 전체주의라 부른다.
기업은 국가와 달리 기본적으로 전체주의 구조를 갖고 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우리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업의 주인은 국가와 달리 속칭 오너(owner.대주주)다. 경영진은 그를 대리해 집행하는 기구다. 국가로 치면 행정부 역할이다. 이런 단일 구조 탓에 오너와 경영진의 전횡이 횡행할 수 있게 된다.
기업 내부에서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막기 위한 장치가 이사회다. 하지만 이사회의 구성원이 대주주와 경영진에 의해 선택된다면 견제 기능은 작동될 수 없다. 권력을 낳은 여당이 국가 권력기관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로 사외이사제도가 생겼다. 국가로 치면 국회 격인 이사회에서 야당 노릇을 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야만 대주주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우리나라가 사외이사제도를 만든 까닭은 대주주 전횡이 해당 개별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큰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1997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가 그것이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모두 처참하게 목격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굴지의 기업들마저 천문학적인 분식회계를 벌여왔고 외환부족 위기가 닥치자 줄도산했다.
‘상법’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주식 시장에 상장한 회사는 의무적으로 이사 총수의 4분1 이상(최소 1인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또 자산총계가 2조 원 이상인 상장회사의 경우 사외이사 3인 이상(전체 이사의 과반수 이상)을 선임해야만 한다. 2009년 개정 상법에선 사외이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명시까지 해놓았는데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최대주주 및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 최대 주주 및 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계열사 임직원과 그 가족, 퇴직 2년 이내의 임직원, 거래관계나 사업상 협력·경쟁 관계인 회사의 임직원, 회사 임직원이 비상임이사로 있는 다른 회사의 임직원, 회계감사나 세무대리를 맡은 변호사와 회계사.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하는 데 어떤 이유로든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자격 요건 미달인 것이다.
사외이사의 최대 덕목은 그러므로 ‘독립성’이다. 대주주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만 구성된다면 입법 취지에 맞지 않을 뿐더러 실제적으로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사외이사가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고액의 연봉만 타가고 대주주와 경영진의 거수기 노릇이나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독립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선임은 주주총회 의결 사안인데 이 또한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사외이사의 두 번째 덕목은 ‘전문성’이다. 경영진이 마련한 주요 경영 전략을 검토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게 이사회의 핵심 역할인 만큼 해당 기업이 하고자 하는 사업 내용에 밝아야 할 것은 당연하다. 독립성 및 전문성과 함께 강조돼야 할 덕목은 ‘도덕성’이다. 돈과 특권 때문에 일하는 게 아니라 한 기업의 미래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상식이 된 사외이사에 대해 다시 복기해본 까닭은 최근 나온 한 뉴스 때문이다. 국내 30대 그룹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219개 기업이 올해 새로 신규 선임한 사외이사 147명 가운데 34%(50명)가 관료 출신이고 이중 24%(12명)가 검찰 출신이었다고 한다. 검찰 이외의 관료는 국세청 7명(14.9%), 법원(판사) 6명(12.8%), 공정거래위원회 4명(8.5%) 등이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관료라고는 하지만 검찰을 포함한 모든 분야가 ‘경제 검찰’이라고 불릴만한 곳이다. 선의로 해석하면 그들의 현직 시절 기업 견제 노하우를 높이 사 사외이사로서 경영진의 전횡을 막아달라는 뜻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해석하면, ‘경제 검찰’의 로비스트가 되어달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사외이사는 견제기구라기보다 단순 거수기를 넘어 전횡을 대변하고 때론 방어하는 기구가 되는 셈이다.
1997년 11월 21일 국가가 부도난 뼈저림을 교훈 삼아 사회이사 제도를 만든 지 벌써 4반세기가 지났고, 사외이사는 이제 상식이 됐지만, 법은 이토록 성길 수밖에 없는 것인가. 법의 그물망이 기업의 족쇄가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곳도 있지만 바람처럼 자유롭게 그물망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그들 모두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법은 결국엔 이현령비현령인가.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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