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스트 강민호’에서 ‘베스트 강민호’···16분간 일어난 ‘생물 야구’
야구는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잡힐 때까지 경기 흐름에 어떤 극적인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 게 묘미인 종목이다. 팀에게도 선수 개인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지난 9일 대전 삼성-한화전에서는 삼성 강민호가 팀 타선의 ‘워스트 플레이어’에서 ‘베스트 플레이어’로 입지가 달라지는 대반전이 있었다. 불과 약 16분 만에 일어난 변화였다.
삼성이 5-1로 앞서던 9회초 삼성 선두타자로 나선 8번 이재현이 볼넷으로 걸어나가며 무사 1루. 이날 경기에 4번타자로 나선 강민호로서는 본인 타석이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강민호는 3루 더그아웃 뒤 라커룸 쪽에서 움직이던 중 MBC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눈길을 확 끌 만한 내용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래픽 처리된 화면에는 ‘베스트 플레이어’로 구자욱이 올라와 있는 가운데 그 옆 ‘워스트 플레이어로’로 강민호가 표시돼 있던 것이다. 강민호가 앞선 타석까지 4타수 무안타 1삼진 1타점에 그치고 있던 것이 요약 정리된 내용이었다.
강민호는 이날 경기의 본인 성적이 얼마나 더 달라질지 본인도 몰랐을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야구의 격언처럼 ‘야구는 모른다’. 강민호는 삼성 타선이 찬스를 이어가 2사 만루로 기회가 연결된 가운데 한화 좌완 김기중의 초구 직구를 받아치며 좌월 만루홈런을 폭발시켰다. 순식간에 한 경기 5타점 경기를 완성한 것이었다. 더불어 팀에 9-1 리드를 안기며 9회말을 남겨둔 벤치와 투수진에 안락함을 선사했다.
강민호의 타석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2사 1·2루, 3번 구자욱 타석에서 볼카운트 3-2까지 이어진 끝에 김기중이 던진 8구째 커브가 스트라이크존 상단을 걸치듯 들어갔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해당 볼 판정을 놓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왔다면, 이닝이 종료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닝이 끝나지 않으면서 강민호는 타석 기회를 얻었고, 만루홈런이라는 대박을 터뜨린 것이었다.
강민호는 경기 뒤 “우연히 경기 전 내가 ‘워스트’라는 것을 화면으로 보고 들어갔는데, 홈런까지 치게 됐다”며 웃었다. 또 “비도 오고 닷새 동안 경기를 하지 않아 감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스트라이크존으로 오는 공 3개만 보고 돌리자는 마음으로 타격했는데 좋은 타구가 나왔다”고 말했다.
강민호는 개인통산 14호 만루홈런을 때린 것이기도 했다. 통산 최다인 이범호(17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강민호는 베테랑이다. 한 경기에서의 일어날 수 있는 변화뿐 아니라 한 시즌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일들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강민호는 “햄스트링이 좋지 않은데, 감독님과 코치님이 ‘갈 길이 멀어 차라리 지금 조절하는 게 낫다’면서 배려를 해주시고 있어 서둘지 않고 최대한 여유를 갖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팀 타선이 최근 썩 좋지는 않다보니 내게 4번타자 중책을 주셨다. 다른 선수들의 페이스가 올라올 때까지 내가 찬스에서 연결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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