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은 맞다… 트럼프, 66억원 배상하라”

■ 뉴욕법원, 27년전 성폭행 의혹 판결
성폭행 증거 없지만 성추행 인정
혐의 부인 과정서 명예 훼손도
성범죄 낙인 트럼프 ‘대선 악재’
항소 입장… “최악의 마녀사냥”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이 9일 뉴욕남부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승소한 뒤 미소 띤 얼굴로 법원을 나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워싱턴 = 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7년 전 성폭행 의혹 관련 민사소송 재판에서 패소해 법원으로부터 500만 달러(약 66억3250만 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3월 말 성추문 입막음 사건으로 미 전·현직 대통령 최초로 형사 기소된 데 이어 성추행까지 인정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년 대선 가도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9일 뉴욕남부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남성 6명·여성 3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996년 봄 뉴욕 맨해튼의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의 탈의실에서 칼럼니스트 E 진 캐럴(79)을 성추행하고 폭행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배심원단은 캐럴이 주장한 성폭행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폭행 주장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내 스타일이 아니다” “완전한 사기” “거짓말” 등 표현을 사용해 캐럴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배심원단은 성추행과 폭행에 202만 달러, 명예훼손 298만 달러 등 모두 500만 달러의 보상 및 징벌적 배상을 명령했다. 지금까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범죄 관련 의혹이 다수 제기됐지만 법원에서 책임이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즉각 반발하며 항소 입장을 밝혔다. 한 차례도 공판에 참석하지 않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판결 직후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역사상 가장 큰 마녀사냥의 연속인 수치스러운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승소한 캐럴은 성명을 내고 “오늘 마침내 세상이 진실을 알게 됐다”고 환영했다. 앞서 캐럴은 공소시효가 지난 성폭력 혐의에 대한 형사고소 대신 뉴욕주가 지난해 11월 성범죄 피해자에게 1년간 한시적으로 민사소송을 허용한 ‘성인 성범죄 피해자 보호법’을 활용해 소송을 청구했다.

성추문 입막음 관련 기소에 이어 성추행까지 인정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행보에 악재가 될 전망이다. 대선 본선을 좌우할 무당파 유권자들에게 가뜩이나 낮은 도덕성 문제가 감점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소가 오히려 당내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져 당내 경선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날 모닝컨설트가 지난 5∼7일 공화당 예비 유권자 35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지 후보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60% 지지를 받아 19%에 그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를 41%포인트 차로 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