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남성성’이라는 정치적 전장…알파남 프레임은?

한겨레21 2023. 5. 1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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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봄비][플러팅 놀이] 알파남 프레임, 또 다른 유해한 남성성
‘알파남’을 다룬 유튜브 콘텐츠 이미지. 유튜브 갈무리

“우리 사회가 연애할 자유, 이성을 꼬실 수 있는 자유가 점점 사라져가는 이상한 나라가 돼가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이 최근 <100분 토론>(MBC)에 나와 저출생 문제에 관해 토론하면서 한 말이다. 천하람 위원장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젠더 갈라치기’ 포지션을 잇는 인물이다. 그는 “요즘 착한 남성들은 오히려 더 소극적이 된 것 같다. 많은 남성, 특히 사회적 규범에 잘 순응하는 남성들은 잠재적 성범죄자 프레임에 영향을 분명히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남성을 굉장히 이상하게 포장해왔던 과거 정부의 프레임을 깨고 넘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 위원장의 말은 온라인 남초(남성 이용자가 다수인) 커뮤니티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

‘퐁퐁남’ 강화하는 ‘알파남’ 프레임의 확산

반년 사이 이성을 두고 ‘관계를 재는’ 남자들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니 커뮤(커뮤니티의 줄임말) 하나?” 서울 합정역 부근의 클럽에서 만나 합석했던 남자 중 하나가 대뜸, 내 친구에게 한 말이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던 그의 말뜻은 여초(여성 이용자가 다수인) 커뮤니티를 하느냐, 그러니까 설마 자신 앞에 마주한 당신들이 페미니스트냐는 확인이었다.

“이거 플러팅(Flirting·집적거림)하는 거 아닙니다.” 비슷한 시기 친구와 그 지인으로 알게 된 사람이 다 같이 집까지 데려다줄 때, 그리고 그가 집 근처 편의점에서 산 원플러스원 하늘보리차 음료수 한 병을 건넬 때 재차 강조한 말이었다. 일반적인 호의를 굳이 이성적 호감이 아니라고 선 긋는 말이 인상 깊었는데, 얼마 뒤 또 다른 자리의 또 다른 남자에게서도 듣게 됐다.

천 위원장의 말처럼 과거의 전형적인 남성 플러팅 각본을 따르지 않는/못하는 남성이 늘었다. 전통 가부장적 이성애 남성성이 몰락한 자리를 두고 여러 남성상이 정치적 각축을 벌인다. 리더십, 성적 매력 등을 갖추고 연애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남성을 의미하는 ‘알파남’이 그 가운데 하나로, 온라인에서 남성들에게 연애 문제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돌파구는 알파남이 돼서 여자들이 접근할 만한 남자가 되어야 하는 거더라.” 한 누리꾼이 천 위원장의 ‘이성 꼬실 자유’에 동의하며 쓴 댓글이다. 알파남이 아닌 남자가 여자한테 접근하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는 탓이라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퍼지는 알파남 개념은 ‘마초남’이나 ‘짐승남’처럼 전통 가부장적 남성다움이 넘친다는 뜻의 유행어와는 다르다. 알파남은 미국 트럼프 정부 시절 젊은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퍼진 ‘레드필’(Red Pill) 프레임을 수입한 것이다. 레드필 추종자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을 삼켰을 때처럼 남녀관계에 대한 ‘진실’을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그 진실이란 여성이 자신보다 우월한 남자를 짝으로 택하는 ‘하이퍼가미’(Hypergamy) 본능으로 알파남을 원하며, 평범하고 열등한 ‘베타남’은 여성을 아무리 배려해도 여성에게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퐁퐁남’을 다룬 유튜브 콘텐츠 이미지. 유튜브 갈무리

미국발 ‘알파남-베타남’ 프레임은 한국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서 ‘설거지론’ ‘퐁퐁남’ 프레임을 강화했다. 설거지론은 성적 매력이 좀 떨어져도 경제력은 갖춘 남자가 많은 남자를 만난 결혼 적령기 여성과 결혼해 그 여성의 ‘문란한’ 과거를 세탁하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연애와 결혼이 어려운 일부 미혼 남성의 박탈감이 여성혐오적 발상으로 표출됐다.

최근에는 설거지론을 넘어 ‘타이타닉론’까지 등장했다. 여성은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처럼 결혼해 60년간 산 남편은 유령 취급할 만큼 잘생긴 전 남자친구만 기억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만큼 ‘남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달리 다수의 여성을 독점하는 알파남에 대한 분노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섹슈얼리티가 계급 결정짓는다는 인식

대신 여성에게 ‘설거지당하지’ 않고 ‘갑’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알파남 되기/만나기 코칭을 하는 소셜네트워크 인플루언서들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블로거 ‘오박사’는 남성 고객은 배우 톰 하디, 여성 고객은 배우 앤 해서웨이로 부르며 지금 결혼시장에서 희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기막히게 맞히며, 테스토스테론을 ‘끌올’하기 위한 ‘알파 성향’ 노래(김기하 <나만의 방식>) 등을 콘텐츠로 제공한다. 오박사는 게시글 ‘34세 X알파 직접 본 썰’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울대 나왔고/ 돈도 연간 20억 넘게 번다/ 아들 둘에/ 이 34살은/ 술도 잘 먹고/ 집에서 씨가(cigar)도 태움/ 아무리 밤늦게 들어가도/ 와이프가 일어나서 맞이함/ 아침 되면 와이프가 음식은 물론/ 집에 음악부터 튼다” 주인공은 1999년 당시 엔씨소프트 사장 김택진이다.

오박사가 김 사장의 남성성과 기업가정신을 연결하는 모습은 그의 코칭이 단지 연애·결혼 시장에서 여성으로부터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술 이상임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문화사회학자 다나 카플란은 책 <섹스 자본이란 무엇인가>에서 섹슈얼리티가 경제적 가치 창출을 넘어 고용 가능성까지 높인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다.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열정을 갖고,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감을 고양하고,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욕구’에 기여한다는 설명이다. ‘대안적 남성성’이란 전장에서 알파남 프레임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우파적 욕망과 겹쳐진다. 알파남과 비슷하게 쓰이는 용어로 계급을 구별 짓는 ‘상남자’(남자 중의 남자), ‘와꾸수저’(외모 금수저)라는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은 정말 알파남을 원할까?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성의 경제력보다 외모를 중시하는 표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감정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가정, 사회, 남성 친목 커뮤니티에서 전통적 남성성이 와해되는 와중에, 자유연애 시장 안에서 개인의 취향인 ‘섹시함’이라는 조건이 급부상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하지만 여성이 ‘존잘남’(아주 잘생긴 남자)을 강조하는 현상에는 원치 않는 성적 접근과 접촉에 미리 선을 그으려는 속뜻도 읽힌다. ‘노 민스 노’(No Means No)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천 위원장은 남성 입장에서 ‘이성을 꼬실 자유’가 사라진다고 강변했는데, 여성이야말로 옛적부터 ‘이성을 마음껏 신뢰하며 플러팅을 받고 싶은 자유’가 박탈돼 있다.

남성의 플러팅할 자유만 강조하는 ‘알파남’ 프레임

나는 여성에게 고백받거나 하룻밤을 보내자는 제안을 종종 받는 남성들을 알고 있다. 대체로 알파남과 거리가 멀다. 여성을 복잡한 존재로 존중할 줄 알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서 지배와 복종 같은 관계 내 권력과 맥락을 (무조건 동등하게 하는 게 아니라) 유희할 줄 아는 이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유연한 남성성에 대한 고민과 실험이다. 고립됐고, 자원이 적고, 존중하는 관계를 배울 기회가 없는 청년을 ‘유해한 남성성’으로 유도하는 정치인이나 연애 코칭 셀럽이 아니라.

*청춘의 봄비: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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