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정준호 '자존심', "밥그릇 싸움처럼 비쳐 속상했다"

강일홍 2023. 5. 10. 11: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폐막된 전주국제영화제 '우려 불식' 성공적 마무리
정재계 지인 네트워크 가동 '기업인 100명 후원회' 발족

"순수 봉사이면서 성과도 내야하는 고달픈 자리이지만 배우로서 보람을 찾는 작업이라면 감수해야죠." 배우 정준호는 최근 폐막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확실한 객관적 성과를 내 공동집행위원장이란 이름으로 그의 역량을 다시한번 확인시켰다. /더팩트 DB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준 배우 정준호의 마력(魔力)은 부드러움과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힘 있는 연기에 있다.

영화 '두사부일체'에서 주연을 맡으며 파격적인 코믹연기로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를 벗는데 성공했고, 영화 '가문의 영광'으로 마침내 충무로 흥행 배우 반열에 올랐다.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는 대학병원 정형외과 의사 강준상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극중 주인공 의사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그는 이전까지 각인된 정준호 특유의 코믹 이미지를 뛰어넘었다는 평을 들었다.

연기 외적인 부분으로도 유명하다. 연예계를 넘어 정재계와 스포츠 스타들까지 마당발 인맥은 익히 소문이 나 있다. 박찬호, 장동건, 신현준, 김승현, 임종석, 최용수 등등 직종을 망라하고 친분이 깊은 사람들이 많다.

그는 또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 안팎에서 주목받는 인물이고, 호텔과 의류 등 성공한 사업가로도 인정을 받는다. 2010년 창업한 기능성 골프웨어 '벤제프'는 연매출이 500억원에 가까운 업체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준호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는 최근 폐막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확실한 객관적 성과를 내 공동집행위원장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역량을 다시한번 확인시켰다.

정준호는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마음고생을 했다. 일부 영화인 출신 이사들이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내면서다. 단지 독립영화제와 결이 다른 상업영화 배우를 얼굴로 영입했다는 이유였다.

3년 임기 중 첫 해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마치 밥그릇 싸움처럼 비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한없이 마음 아팠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정준호를 직접 만나 가슴에 담아 둔 자초지종 속내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9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정준호는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임명 당시 일부 반대 목소리에 "내막을 모르고 보는 사람들한테는 마치 밥그릇 싸움처럼 비칠 것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강일홍 기자

-최근 폐막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어느 해보다 높은 성과를 내고 성공적 마무리를 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영화를 만나는 것은 늘 가슴 벅찬 일입니다. 올해 영화제 슬로건이 '우리는 늘 선을 넘지'였어요. 선을 넘고 경계를 무시하고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색깔을 잘 표현했다고 자부합니다. 뜨겁게 호응해주신 전주시민과 영화인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첫 단추를 잘 꿴 만큼 내년과 내후년엔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영화제를 만들어갈 자신이 생겼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 한국소리문화전당 모악당을 중심으로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6일까지 열흘간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를 비롯해 오거리 문화광장, 팔복예술공장,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등 전주시 전역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국내외 영화인들이 참석한 레드카펫 행사를 시작으로 개막작은 '토리와 로키타', 폐막작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상영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이후 가장 힘들었던 게 있다면.

영화제에 기존 이사로 참여하고 있던 몇몇 영화인들의 반대 목소리에 맥이 빠졌죠. 나중에 오해는 풀었지만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집행위원장은 축제에 초대받아 카메라 앞에서 서는 배우와는 달라요. 말그대로 갑을이 바뀝니다.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성과를 내야하죠. 오직 대가없는 순수 봉사라는 점에 보람을 찾는거죠. 어떤 명예나 자리를 차지하는 곳이 아닌데 왜 반대 목소리를 감수하며 해야하는지 자괴감도 들었어요.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지난해 12월 민성욱 부집행위원장과 함께 배우 정준호를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우범기 조직위원장(전주시장)은 정재계의 폭넓은 인맥과 함께 사업 마인드와 스타성을 동시에 갖춘 정준호를 최적임자로 꼽았다. 정준호 카드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영화인들만의 잔치가 아닌 전국민적 관심을 끌어모을 축제로 키우기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고 추천받은 뒤 실행한 첫번째 영입 목표였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다고 들었다.

'세계적 거장'으로 불리는 다르덴 형제는 올해 우리 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 영화 팬들과 만났습니다. 지난 23년간 다져놓은 기틀 위에 영화인들 모두가 합심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영화제 본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기존과는 다른 뭔가 새로운 볼거리로 시민들과 호응한다는 목표가 빛을 발했다고 자평합니다.

올해 영화제 관객은 6만5900명으로, 지난해(5만641명)보다 크게 증가했다. 일반 영화 매진율은 지난해보다 17%가량 높은 68.8%(538회차 중 370회차 매진), VR 영화 매진율은 96.5%(86회차 중 83회차 매진)를 기록했다. 좌석 점유율도 83.1%로 지난해보다 15%가량 늘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한 해외 게스트는 지난해 56명에서 올해 126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코로나 기간 등을 감안하더라도 뚜렷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된다.

정준호는 지난해 재미교포 여소영 감독의 독립영화 '스모킹 타이거'를 촬영했다.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단편영화로 수상한 뒤 영화제 지원을 통해 장편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더팩트 DB

-현역 배우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는 일은 매우 드물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사실상 배우가 맡기엔 벅찬 일입니다. 초대손님이 아니라 호스트로서 읍소하고 부탁해야할 일이 많아요. 단순히 영화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지역 소상공인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야합니다. 故 강수연 선배가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건 영화인들이라면 다 알고 있죠. 저 역시 대중 앞에 알려진 배우의 열정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걸 절감합니다.

정준호는 사업가적 마인드와 기질을 충분히 발휘했다. 우선 독립예술영화인들의 창작자 지원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유의미한 성과를 냈고, 시민들이 호응하는 축제 분위기 붐업 조성에도 동분서주했다. 실제로 정준호는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이후 전주시 구석구석 식당 등을 찾아다니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인과 사진촬영 등 시민들과 친숙한 시간을 많이 가졌다.

-영화제 후원회 발족에 발벗고 나섰다고 들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영화제는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돈도 중요합니다. 전주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직접 영화 제작 지원을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데 도예산은 2억 정도에 불과해요. 독립예술영화인들을 위한 다양성을 발현하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토양이 절실합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운영하고 싶어도 이를 간과해서는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정준호는 자신의 탄탄한 정재계 인맥과 네트워크를 가동해 100명의 후원회를 꾸렸다. 문화예술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기업인들이 대부분이다. 이중 40명 정도를 만나 후원을 약속 받았다. 적게는 200~300만 원부터 많게는 5000만 원까지 다양하다. 현재까지 3억원 정도 남짓이지만, 내년까지 점진적으로 키워간다는 복안이다. 그는 "상업영화에서 30억원은 별거 아닐지 몰라도 저예산 독립영화 쪽에서 3억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집행위원장으로서 앞으로도 두번 더 영화제를 개최하게 되는데 어떤 마음가짐인지 궁금하다.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텐데요. 저를 임명한 조직위원장(전주시장)과는 영화제에 몸담기 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분이지만 능력을 인정해 적임자로 꼽았다는 말이 고마워서 중도 포기할 수 없었죠. 한번에 큰 욕심을 내기보다는 작더라도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제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임기내 영화제 도약의 발판에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배우로서도 일생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을 것같습니다.

그가 독립영화와 인연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정준호는 지난해 재미교포 여소영 감독의 독립영화 '스모킹 타이거'를 촬영했다.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단편영화로 수상한 뒤 영화제 지원을 통해 장편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험난한 이민 생활 중에 딸과 겪는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준호는 주연배우로 오는 6월 트라이베카영화제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2000년에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FF)는 부분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국제영화제다. 경쟁부문은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등으로 구성되며 경쟁 초청작은 신인감독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현재는 출범 당시 생소하게 여겨졌던 '디지털영화' '대안영화' '독립영화'라는 색깔이 더 뚜렷하게 자리매김 돼 있다. 향후 3년 안에 전주영화전용관 '독립영화의 집'이 완공되면, 전주는 명실공히 전 세계 유일의 독립영화 본산으로 재탄생 된다.

eel@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Copyright © 더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