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혐오 민폐시위, 기업이미지 ‘먹칠’
공공 질서·타인 기본권 침해 심각
영어 문구·악의적 영상 제작 배포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낮잠
“하루 종일 울려대는 노동가요와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 때문에 출퇴근 길뿐만 아니라 회사에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해외 거래처 관계자들이 사옥을 방문하는 날에는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정도예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근무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365일 사옥 앞에 진을 치고 시위를 벌이는 이들 때문에 괴롭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시위자들이 단순 소음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글로벌 기업 이미지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소연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회 및 시위로 대기업 사옥이 멍들고 있다. 특히 이 회사의 경우 10년 넘게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A씨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A씨는 불법 천막을 치고, 초대형 스피커를 동원해 비방과 욕설을 쏟아낸다. A씨는 과거 자신이 고용됐던 판매 대리점 대표와의 불화 및 판매 부진 등을 이유로 용역계약이 해지됐다. 이후 A씨는 고용 관계가 전혀 없는 대기업 앞에서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회사는 A씨를 상대로 소음 및 명예훼손 문구 금지 등 가처분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법원은 A씨가 사용하던 ‘세계적 XX 기업, 고소·고발 남발한 OO기업, Global company Kia Motors is a corrupt and inhumane company’ 등의 문구와 장송곡 사용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A씨는 문구를 일부 수정한 현수막을 다시 내걸고, 명예훼손과 인격 모독성 비방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처럼 왜곡된 내용이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최근엔 시위자들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 위해 영문으로 작성한 현수막과 영상 등을 제작해 유포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위치한 한 대기업 사옥 앞에는 ‘범죄 경영진 구속처벌’ 등의 명예훼손성 문구가 적힌 현수막 10여개가 줄줄이 걸려있다. 강남역 인근 또 다른 대기업 사옥 앞에도 새빨간 글씨로 ‘갑질하고 직무 유기하는 XX’ 등의 욕설이 적혀있다.
기업들은 참다못해 허위 사실, 모욕, 명예훼손 등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소요 시간이 길고, 승소하더라도 시위 자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패소하더라도 법원이 금지한 표현만 수정한 현수막을 새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 영역을 넘어 공공의 질서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집회 또는 시위가 일상화되고 있다”며 “성숙한 집회 및 시위 문화 정착을 위해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미 정치권에서도 과도한 시위로 인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국민의 인격권 및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다수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에는 ▷명예훼손, 모욕, 반복된 악의적 표현으로 인격권 침해 ▷소음·진동·모욕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해치는 경우 ▷성별·종교·장애·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 조장 ▷공포심, 불안감을 유발하는 음향·화상·영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법적 공백, 느슨한 행정 규제 등 법률적·사회적 통제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공공질서를 위협하고,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민폐 시위’가 양산되고 있다”며 “과거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집시법을 이제는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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