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운전자보험 만기가 100세?… 금융당국, 보험상품 과도한 만기 확대 규제

허지윤 기자 2023. 5. 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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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17 시행 첫해 CSM 산정 방식 두고 혼란
금융당국, 후속 가이드라인 등 지침 마련 나서
보험 만기 늘려 재무가치 부풀리기 꼼수 손질한다
(왼쪽부터)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현대해상, DB손해보험 사옥 전경./각 사 제공

금융 당국이 보험상품의 과도한 만기 확대에 대한 규제에 나선다. 보험사들은 올해부터 도입된 새 국제보험회계기준 IFRS17에 대응해 100세 만기형 보험 등 최장기 보장성보험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회계상 이익을 늘리기 위한 꼼수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만기가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보험료가 비싸진다는 단점이 있다.

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IFRS17에 따라 도입된 미래 수익성 지표인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에 관한 후속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논의 중이다. 금융 당국은 CSM을 계산할 때 활용되는 사망률, 위험률, 손해율 등의 계리적 가정에 대한 정비와 함께 최장 만기 보험 상품에 대한 규제 장치 필요성도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보험사들이 IFRS17로 전환하면서 회사 재무 구조와 가치 평가를 유리하게 하고자 90세 만기·100세 만기 보험과 같은 초장기 보험 상품을 무분별하게 내놓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시각에서다. CSM은 보험사가 상품 판매로 미래에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익성을 나타내는 평가지표다.

최근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을 앞두고 저축성보험 비중을 축소하고 보장성보험을 늘리는 데 주력하면서 100세 만기형 운전자보험·암보험·치매보험·종신보험 등 기존보다 만기를 대폭 늘린 보험을 줄줄이 출시했다. 보장성 보험의 만기 확대는 기대 수명 연장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게 보험사들의 주장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겉보기엔 보험 보장을 받는 기간이 늘어나 좋아 보인다.

하지만 다른 셈법이 깔려있다는 게 보험 전문가의 지적이다. IFRS17로 전환하면서 신설된 CSM을 키우려는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IFRS17이 사업비를 전보험 기간에 분산해 상각·차감하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 기간이 길면 분산되는 사업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기고, 이에 따라 재무적으로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CSM은 보험 계약 기간에 걸쳐 상각되고 IFRS17 기준에 따라 산출된 이익 지표의 예상과 실제 차이 등을 반영해 보험이익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IFRS17 도입에 따라 보험사들은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계산해야 한다. 고정된 금액이 아닌 시세 변동에 따라 부채가 달라지는 만큼, 자본변동성 또한 커진다. /그래픽=조선비즈

문제는 보험사들이 회계상 부채를 줄이고 이익 증가 폭을 늘리기 위해 보험상품 만기를 무분별하게 확대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전자보험의 경우 핵심 담보만 가입해도 되는 상품인 데다 사실상 70세 전후로 수요가 없어지는데 만기를 100세까지 늘리는 것은 보험 계약자에게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더구나 만기가 길다는 이유로 단기 상품에 비해 보험료를 더 높게 매길 여지도 크다. 보험기간이 긴 암보험, 치매보험 등 무해지·저해지 상품은 보험료는 저렴하지만 납입 기간이 끝나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면 해약 환급금이 없거나 매우 적다. 보험사 입장에선 보험상품의 해지환급금을 과도하게 낮게 설정해 사업비와 손해율 등을 낮춰 CSM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환급금이 적으면 해지율이 떨어지고, 낮은 해지율을 이유로 보험료는 오히려 비싸져 소비자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새 회계기준 도입 첫해인 만큼 보험업계도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 보험업계는 CSM을 계산할 때 활용되는 사망률, 위험률, 손해율 등 계리적 가정을 각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데서 비롯된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 문제를 제기했다. 타 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CSM 수치를 발표한 대형 보험사들은 보수적으로 가정해 CSM을 산정한 것인데 다른 가정하에 CSM을 높게 낸 보험사와 비교되고 순위가 매겨지면서 자칫 수익성과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이 CSM 산출에 쓰는 손해율과 해지율 가정 등에 관한 후속 지침 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IFRS17 제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CSM 등 보험사의 가치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CSM 후속 지침 마련의 하나로 여러 방안과 함께 초장기 만기 보험을 용인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다”면서 “CSM 관련 지침은 논의를 거쳐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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