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비정상' 두 외국인...엔터산업 혁신 위해 뭉쳤다
협업툴 바탕으로 투명한 경영, 'IT 스타트업' 지향
9대 1 파격적인 수익 배분, 아티스트 성장에 집중
이른바 '이승기 사태'로 불거진 연예기획사들의 불투명한 수익 정산 등 업계의 고질적인 부조리를 원천 차단하고 투명한 경영을 목표로 하는 신생 업체가 등장했다. 특히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설립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JTBC의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유명세를 탄 미국인 출신 방송인 타일러 조지프 라쉬, 벨기에 출신 줄리안 퀸타르트가 지난 2월 공동창업한 '웨이브엔터테인먼트'의 이야기다.
국내 연예기획사 중에는 경영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아티스트와 마찰을 겪으며 논란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았다. 웨이브엔터테인먼트는 스스로를 'IT 스타트업'이라고 칭하며 협업툴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아티스트와 공유하는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웨이브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는 어떤 일이 들어오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회사 운영 방식부터 의사결정 과정, 재무 상황까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들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타일러·줄리안 두 공동 창업자는 10년 넘게 한국에서 방송활동을 하며 연예기획사의 문제점을 몸소 느꼈다고 한다. 이에 IT 기반 투명한 경영 외에도 9대 1의 수익 배분 등 파격적인 시도로 K-연예계에 새로운 물결(웨이브)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웨이브엔터테인먼트는 '외국인이 세운 국내 최초의 연예기획사'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소속 아티스트 9명 모두 외국인이지만, 외국인 전문 연예기획사를 지향하지 않는다. 한국인 아티스트도 함께 하는 회사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아티스트의 결정권과 책임감을 높여 스스로 자기계발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는, 연예기획 업(業)의 본질에 충실한 웨이브엔터테인먼트의 두 공동 창업자를 만나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웨이브'에 담은 의미는
▶타일러(타): 웨이브엔터테인먼트는 IT 협업툴을 활용해 투명한 운영 체계를 갖고 소속 아티스트의 결정권을 강화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나 에이전시에서는 이런 구조를 본 적이 없다. 투명성과 결정권을 기술로 현대화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제대로 터뜨린다면 파도처럼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웨이브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어떤 기술을 활용하나
▶타: 자체적으로 개발한 내부 플랫폼이 있다. 각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대시보드를 통해 일정은 물론 자신에게 들어오는 문의를 수시로 조회·관리·확인할 수 있다. 결제가 이뤄진 부분에 대한 금액도 실시간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아티스트는 자신과 관련된 현황을 플랫폼을 통해 언제나 확인 가능하다.
▶줄리안(줄): 기존 엔터사의 경우 소속 아티스트가 자신에게 들어오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주로 매니저가 전화를 받고 매니저가 필터링해서 알려주기 때문이다. 받고 싶지 않은 일을 먼저 거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니저가 잘못 판단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우리는 모든 문의를 무조건 아티스트에게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숨길 수가 없다. 문의가 들어오면 알림으로 바로 확인한 뒤 회사와 소통하면 된다.
-출연료 협상은 어떻게 하나
▶타: 보통 엔터사에 소속돼 있다고 하면 감과 경험으로 자신의 몸값을 안다. 우리는 시장에서 들어오는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먼저 부르는 값이 있고 확정되는 값이 있다. 이 협상의 폭이 수치로 모두 기록된다. 이것을 인물·지역·주제·파트너 등 구체적인 유형별로 나눠서 시장에 의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내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기업과 함께 어떤 주제로 강연한다고 할 때의 상황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시장 가치에 맞는 정확한 출연료를 산출하게 된다.
-결정권을 주면 귀찮은 일을 기피하는 부작용은 없을까
▶줄: 우리는 억지로 누구를 키우는 회사가 아니다. 웨이브엔터테인먼트는 어쩔 수 없이 묶여있는 회사가 아니라 있고 싶은 회사,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데 가고 싶은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우리와 함께할 명분이 분명하면서도 확실해서 아티스트들이 더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어떤 일을 안 하고 싶다면 안 하면 되는 거다. 그러면 더욱 존중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결국은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타: 자신이 하고 싶은 유형의 일만 선택하는 것은 시스템 악용이 아니라 활용이다. 아티스트가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포인트다. 이전에는 어떤 일이 있고 없고 아티스트에게 전달하는 것을 매니저가 필터링해왔다. 그것을 안 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니 그 일을 선택하게 되는 거다.
-소속 아티스트들은 회사의 방침을 어떻게 보나
▶타: 수익 배분을 9대 1로 한다고 하고 실시간으로 다 보여준다고 하니 '노(No)'를 할 이유가 없었다. 아티스트들이 제기했던 것은 '과연 이런 체계로 회사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었다. 돈이 안 돼서 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던 것 같다.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니 믿고 가겠다며 의구심을 거뒀다.
▶줄: 더 많은 이익을 내고 그것을 나눠야 믿음을 줄 수 있다. 회사가 안전하다는 것은 숫자로 증명했다. 수익을 내며 잘 돌아가고 있다. 두 번째는 일이 잘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데 당장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원하는 만큼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 이상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온라인 양식(Forms)을 활용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다들 익숙해지면서 업무의뢰와 회신이 훨씬 빨라지고 효율적으로 됐다.
-회사의 주력 분야는
▶줄: 현재 모여있는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이야깃거리를 갖고 강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강연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소통의 툴이다. 토크 콘서트 등 우리만의 것으로 소속 아티스트들이 더욱 빛날 수 있는 시도를 하고 싶다. 단순히 아티스트 수를 늘려서 초기에 회사의 몸집을 키우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확장만 추구하면 회사가 무너지는 경우를 봤다.
-한국인 아티스트도 영입하나
▶타: 자신의 브랜드나 상품성을 더 개발하고 싶은데 전통 엔터사처럼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업무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핏이 맞을 것 같다. 자신을 스스로 개발하며 책임을 지고 싶고, 전체 상황을 이해하며 파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잘 맞겠다. 이미 성공한 사람보다는 초창기에 있는, 아나운서나 강사처럼 혼자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에게 하나의 툴로서 활용되기가 좋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더 빨리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끌려가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주고 싶다. 많은 경우에 남이 시킨 일을 해야 하고 남이 하라고 하는 대로 공식에 맞춰 움직여야 되는데 자기만의 길을 걸을 수 있고 개척해 나갈 수 있게끔 하는 기회들을 만들어주고 싶다.
▶줄: 우리가 주력으로 하는 강연은 사회를 더 좋게 만들고 재밌는 아이디어를 남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웨이브엔터테인먼트의 강연은 유익하다'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나 TED처럼 사람들이 들어보고 싶은 강연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소속 아티스트들한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고 우리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좋은 강연에 욕심을 내면서 많이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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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범 기자 bum_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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