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여행] 안동 세 마을 이야기
(시사저널=글 강은주·사진 신규철)
춤추고 노래하며 글 읽는 즐거움이 이곳에 있다. 아름드리 회화나무와 너른 돌 병풍, 활달한 물길이 에워싼 경북 안동의 세 마을을 뒷짐 지고 걸었다.
가랑비가 꽃잎을 다 떨구어 놓기 전에 길을 나서기로 했다. 숲에서 이는 느슨한 바람 소리에 호흡을 맞춘 채, 사사로운 시름일랑 씻어 내리고 싶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정사(精舍)를 찾은 것도 이런 연유였으리라. 정할 정, 집 사. 자연의 맑은 기운으로 몸과 마음을 닦는 처소. 글 읽고 정신을 다스리는 것이 과업인 선비에게 정사는 일상 공간에 들인 별서이자 학문적 은신처였다. 유려한 경치가 필요충분조건이었으니, 낙동강 물길 따라 눈부신 벼랑이 휘돌아 흐르는 경북 안동 땅만큼 정사를 지어 올리기에 절묘한 곳도 없을 터. 저마다의 풍광과 사연을 간직한 채 아득한 세월을 버티고 섰을 이들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부용대를 구심점으로 자리한 네 곳의 정사를 따라 느릿느릿, 오래도록 걸을 작정이었다.
만송정 숲에서 바라본 하회 풍정
누구나 아는 이름, 모두에게 익숙한 풍경, 그러나 영원히 닳지 않을 감흥을 간직한 곳. 하회마을, 하고도 만송정 숲에 다다랐다. 나무 그늘에 들어서자 솔 향이 확 밀려들더니 저편에 농묵으로 그린 듯한 수묵화가, 이편엔 세필로 묘사한 듯한 풍속화가 펼쳐진다. 수묵화에 든 것은 강 건너 벼랑 끝 아스라한 옥연정사와 겸암정사, 풍속화에 든 것은 마을에 폭 안긴 원지정사와 빈연정사다. 모두 서애 류성룡과 겸암 류운룡 형제의 유산이다. 강물처럼 깊고 부용대처럼 높은 학문이 이곳에서 무르익었을 것이다. 서애가 글 읽고 몸을 돌봤을 원지정사, 관직에서 물러난 겸암이 귀향해 서재로 썼다는 빈연정사에서 한동안 부용대를 바라보았다. 암향 물씬한 풍경이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골목 깊숙이 다다르자 좁다란 샛길이 보인다. 저 멀리 노거수 한 그루가 기지개 펴는 듯한 자태로 우뚝 섰다. 홀린 것처럼 종종걸음으로 그 앞에 다가서니 조촐한 안내문이 나무의 내력을 알려 준다. "삼신당은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한다. 류종혜가 입향할 때 심었다고 알려진 수령 600년이 넘는 나무로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맺는다. "이곳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존귀한 삼신당 느티나무와 하얀 나비처럼 나부끼는 소원지, 그리고 소원지를 빼곡하게 매달아 놓은 울타리가 완벽한 구도를 이룬 채 자리해 있었다.
모두를 수호하듯 떡하니 중앙을 지키는 건 사람 키 높이만 한 하회탈 복채함이다. 활짝 웃다 못해 일그러진 듯한 하회탈의 기묘한 표정은, 일단 한 번 보고 나면 잊을 수 없는 심상이 되어 머릿속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마을을 돌아 나오는 걸음걸음마다 탈의 눈초리와 입꼬리가 밟혀서 그길로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찾기로 했다. '파안대소'란 말의 실체를 목도하고 싶었다.
탈이 된 삶, 삶이 된 탈
정사가 선비 문화의 상징물이라면,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서민들의 정신적 유산이다. 백정부터 양반까지, 농사짓는 소부터 상상의 동물인 주지까지 세상의 온갖 존재를 동원해 민초의 고단한 삶을 유희와 쾌락으로 승화한다. 연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서낭신의 현신인 각시광대가 무동을 서서 마을로 강림하는 모습이다. 이내 주지가 뒤엉켜 춤추는 난장판이 이어지더니, 관중을 희롱하는 백정과 괴팍하고 탐욕스러운 할미가 차례로 등장한다. 앙증맞은 춤사위를 선보이던 부네는 욕망의 화신인 파계승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이를 몰래 엿본 초랭이와 이매가 한바탕 흉을 보고 욕을 한다. 체통 없이 부네를 두고 싸우는 양반과 선비 사이에 또다시 백정이 끼어들어 갈등이 고조되지만, 종국엔 흥겨운 춤과 장단이 이 모든 난리법석을 잠재운다.
공연을 본 뒤에 더 선명해지는 얼굴, 탈이야말로 연희의 진짜 주인공이란 확신이 든다. 오늘날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에 쓰이는 탈의 7할이 탄생한 곳, 하회마을 초입에 자리한 류공방을 찾았다. 이곳엔 국보 하회탈과 꼭 닮은 탈을 복원하고 구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예술가 류호철이 있다. 그는 공연에서 북을 치고 이따금 배역을 도맡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생이기도 하다. 춤을 배운 지는 10년이 좀 넘었고, 탈을 깎기 시작한 건 그보다 서너 해 앞선다.
그렇게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탈을 조각했지만 오늘도 그의 목표는 국보 하회탈에 최대한 가까운 탈을 완성하는 것이다. "양반탈의 주름 개수는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 아시나요? 처음 하회탈을 만들었을 땐 표정을 잡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웃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데 자꾸 우는 것처럼 보여서 난감하기도 했죠. 양반탈 같으면 뒤로 젖힐 땐 환하게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마부터 아래로 내려다볼 땐 화난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하회마을에서 나고 자랐으나 잠시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그는, 조소와 회화를 거쳐 불현듯 이곳으로 돌아와 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운명에 아로새겨진 탈을 비로소 받아들인 셈이다.
"하회마을이 풍산 류씨 집성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하회별신굿탈놀이를 향유한 이들은 서민이었죠. 달리 말하면 하회마을엔 반촌과 민촌이 공존하고, 양반과 서민의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는 거예요. 전 이 마을에서 광대가 된 유일한 풍산 류씨일 겁니다. 가장 좋아하는 배역은 백정이죠." 말을 끝낸 그의 얼굴이 일순 곡선을 이루며 물결친다. 완연한 하회탈의 웃음이었다.
35번 국도를 타고 호젓한 풍경을 가로지르다 보면 도산서원의 맑은 문기가 서린 땅, 도산면에 다다른다. 호계서원과 예끼마을을 지나 안동호반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접어드니 머지않아 산속에 폭 안긴 안동호와 장쾌한 건축물, 그리고 고아한 성곽이 에워싼 마을 하나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안동 여행자를 위한 새로운 이정표, 안동국제컨벤션센터와 세계유교문화박물관, 한국문화테마파크가 한데 모여 있는 풍경이다.
의병 정신이 깃든 놀이터, 한국문화테마파크 산성마을
지난여름 개장한 체류형 복합 문화 관광단지 '안동 3대 문화권 사업장'은 안동의 역사와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집대성한 공간이다.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 들어선 세계유교문화박물관은 유교 사상과 철학을 망라한 4000여 건의 자료를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처럼 충실히 큐레이션해 거대한 '라키비움'을 이룬다. 나선형의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이어진 디지털 체험형 전시실은 유교의 근본 이념을 감각적인 미디어 아트 작품에 담아 설파한다. 관람객은 이 경사로를 그저 걷는 것만으로 색다른 울림을 얻는다.
선비 정신의 고결한 흔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문화테마파크 산성마을은 16세기 조선 시대의 의병 운동을 재현한 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이들의 모습을 이곳에서 엿볼 수 있다. 도자기 공방과 남문 역참, 봉수대를 지나 숲길을 내려가다 보면 마을 입구 검문소와 늠름한 의병의 위용을 맞닥뜨린다.
마을에 닿아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곳은 의병체험관이다. 임진왜란 시기 전투를 배경으로 디자인한 몰입형 3D 체험 프로그램인데, 관람객은 몸소 의병이 되어 당대를 대표하는 무기 천자총통과 비격진천뢰, 활, 석전을 이용해 약 30분간 전투에 나선다. 몸을 움직일수록 정신은 더 꼿꼿해진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진다. 이 곱고 따뜻한 봄볕이 다 스러지기 전에 가일마을로 간다. 가일이란 이름은 해가 아름답다는 뜻인데, 풍산 들에 펼쳐지는 해돋이 풍경이 유독 눈부시기에 그리 불러 왔다고 한다. 물론 마을의 아름다움은 햇살에만 있지 않다. 안동 권씨 집성촌인 이곳은 우암 권준희를 비롯해 1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을 만큼 찬란하고 기개 높은 곳이다. 특히 권오설 선생은 3․1운동에 참여한 뒤 문중 소유 건물인 노동서사․노동재사 등을 활용해 청년과 농민을 위한 교육 시설을 운영했고, 풍산소작인조합을 지도하며 마을의 번영에 앞장섰다. 역사의 곡절을 간직한 노동서사는 현재 예술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책방 '가일서가'로 변모해 마을을 찾는 이에게 다정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무의 손짓 따라, 가일마을 산책
마을 어귀 가곡저수지 옆에 자라난 회화나무와 버드나무는 모두 보호수다. 이 단어를 볼 때마다 보호의 주객이 전도됐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수령이 회화나무 300년, 버드나무 200년에 이르니, 오랜 세월 동안 마을과 사람들을 살피고 지켜 온 건 도리어 나무가 아닐까.
가일마을엔 병곡종택을 시작으로 수곡고택, 남천고택에 이르는 여러 채의 단정한 고택이 나란히 늘어선다. 보호수 앞에서 마을의 주산인 정산을 바라보고 죽 올라가면 병곡종택이다. 이 유려한 고택의 별명은 시습재다. 짐작하는 것처럼 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유명한 구절에서 왔다. 15세기 도승지와 관찰사를 지낸 화산 권주가 살았던 집을 18세기 중엽에 후손이 고쳐 지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는데, 집주인의 권위나 건물의 규모에 비해 질박하고 단출한 만듦새가 인상적이다. 종가 뒤편엔 산소가, 안채 북동쪽에는 사당이 자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삶과 죽음이 서로 멀리 있지 않음을 느낀다.
마을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역사문화박물관이다. 권영록 관장이 40여 년간 수집한 수만 점의 문헌과 유물을 소개하는 민간 박물관으로, 2016년에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한 풍서초등학교에 들어섰다. 개인이 소장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하고 귀한 전시품이 세월의 흔적이 그득한 폐교의 교실과 복도 곳곳에 펼쳐져 있다.
6․25전쟁통에 발간된 교과서부터 권문해 선생이 편찬한 백과사전 의 정고본, 안동 지역에서 정신적 지주로 통하던 보백당 김계행의 문집, 효자문 현판, 선비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녹패(조선 시대 월급 명세서)와 호패에 이르는 온갖 책과 활자 인쇄물을 하나하나 살피자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권 관장에게 물었다.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많은 책과 인쇄물을 수집하게 했는지. "몸소 '우공이산'을 실천한 셈이죠. 종이는 1000년을 버틴다고 하잖아요. 배움의 힘이 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이 많은 것을 모았나 봅니다." 충실한 '우공'의 어깨에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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