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아웃도어, 아웃도어가 일상…경계 허문 일본 브랜드들
요즘 한국의 아웃도어 트렌드 변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수년간 비박 전문가로 활동한 내가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할 정도다. 코로나를 거치고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지면서 아웃도어를 즐기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에 따라 사람들이 쓰는 장비 스타일도 변했다. 조금이라도 가볍게, 그리고 나만의 장비라고 할 만한 특색 있는 액세서리 등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어떤 사람은 배낭이나 클러치백, 주머니 등의 장비를 '자체 제작'해 자신이 사용하거나 팔기도 한다.
아웃도어 활동은 이제 오롯이 자연을 즐기는 것을 넘어 본인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아웃도어 편집숍에서 근무하며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손님들을 대비해 나는 지속적으로 시장조사에 뛰어든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상품들을 찾는 것이 나의 일 중 하나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나에게 보물창고와 같다.
하루 2,000명 방문
일본은 오래 전부터 소규모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일본의 지형적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높고 규모가 큰 산들이 즐비하다. 장거리 트레일 코스가 확실히 많다. 기후 또한 다양하다. 아웃도어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발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잘 정비된 등산로, 캠핑에 관한 규제와 시선이 대체로 관대한 점에서 그렇다. 이에 따라 일본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아웃도어 아이템들이 많다. 트렌드 변화 속도도 빠르다. 그 속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도쿄 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 소규모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오프 더 그리드Off The Grid' 행사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망설이지 않고 찾아가봤다.
작은 브랜드들의 아기자기한 제품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아웃도어쇼는 규모가 크다. 여기엔 세계적인 브랜드들을 정식으로 수입하는 국내 기업들이 참가한다. 오프 더 그리드의 분위기는 이것과 살짝 다르다. 행사는 2015년부터 열렸고, 올해 6회째로 70여 개 업체가 참가한다. 이곳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행사장도 의외다. 이번에는 학교 운동장처럼 생긴 곳에서 열렸고, 각 브랜드는 천막 아래 자리잡았다. 일본에서 소소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소규모 브랜드들이 그들의 작은 숍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아기자기하게 자리했다. 낯선 풍경이지만 이곳만의 장점이 확실하다. 제작자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제품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한다.
참여 브랜드들 특성이 제각각인 것도 오프 더 그리드의 매력이다. 산행, 야영 카테고리 외에 트레일러닝, 자전거, 낚시 관련 장비도 많다. 아웃도어 분야 온갖 것이 섞여 있어 새롭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 투성이다. 아웃도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장에 있노라면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주최 측 스태프는 하루 2,000여 명이 행사장을 찾는다고 했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행사 당일 '오픈런(문이 열리자 마자 뛰어가는 것)'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색상
행사장은 많은 방문객으로 북적댔지만, 소란스럽거나 얼굴 붉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쓰레기가 나뒹굴거나 쓰레기통이 '구토'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행사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구경했다. 어떤 가족은 소풍 나온 것처럼 아무 데나 걸터앉아 여유를 즐겼다. 축제 같았다고 할까? 오프 더 그리드를 알고 찾아올 정도면 실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면서 자연을 아끼는 사람들일 텐데, 그래서인지 행사장은 질서정연하고 깔끔했다.
일본과 우리나라 마니아들의 차이점이 얼마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똑하고 민첩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를 빠르게, 제대로 흡수한다. 최근에는 아크테릭스, 클라터뮤젠, 피엘라벤처럼 아웃도어 본연에 집중되어 있던 브랜드들이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고, 그것을 한국 사람들은 멋지게 소화하고 있다.
아웃도어룩을 일상 생활에서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한국식이라면, 일본은 반대다. 일상에서 가볍게 착용할 수 있는 의류들을 아웃도어룩에 활용하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등산복이라면 당연히 기능성 소재여야지. 그리고 등산복스러워야지!'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스타일이 눈에 많이 띄었다.
행사장까지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지만오프 더 그리드에 참여한 시간은 알찼다. 새로운 장비들에 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고, 몰랐던 숨은 보석 같은 브랜드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아웃도어 행사가 열린다. 행사 주최 측이 가끔 우리 매장으로 찾아와 행사 참가의사를 묻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브랜드 수입사가 아니기 때문에 참가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답하곤 했다. 그런데 오프 더 그리드 참여 부스들 중엔 '마이기어' 같은 아웃도어 편집숍 업체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숍을 브랜드화시켜 그들만의 특성을 담아 장비들을 전시했다. 그 모습이 나를 자극했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숙제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자신들만의 철학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 소규모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품의 매력이나 퀄러티도 이전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이런 브랜드 제작자들과 유저들이 소통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뭔가 잔뜩 집어먹고 배부른 기분으로 돌아왔다.
이거 괜찮았어요! 3
1. 블루퍼 백팩스blooperbackpacks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여기 배낭이 가장 눈에 밟혔다. 심플하면서도 귀여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착용해 보니 몸에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예뻤는데,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 함께 사용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주문하면 손에 얻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다(마음에 든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2. 할로 코모디티halo commodity
모자와 스카프, 버그넷 등 헤드기어를 만드는 브랜드. 오래 전부터 즐겨 찾던 브랜드인데, 행사장에서 볼 수 있어 반가웠다. 모자뿐만 아니라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매력적인 제품들이 많았다.
3. 프리 텐트Pre Tents
유니크한 색상과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존의 여러 텐트와 달리 동그랗게 뚫린 출입구가 인상적이었다. 흔하지 않은 색감도 예뻤다. 필드에서 사용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외 여기서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과 의류가 내 지갑을 똑똑 두드렸다. 지갑을 열지 않기 위해 참느라 애 먹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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