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榮華)로운 영화, 멀어져가는 극장
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첫 데이트를 영화 감상으로 시작한 커플이 제법 있을 것이다. 영화를 골라 약속을 잡고 극장에서 상대가 오기를 기다릴 때의 심정이란…. 팝콘과 음료수를 사 들고 좌석을 찾아 나란히 앉았을 때의 두근거림은 결코 영화에 대한 기대 때문은 아니었으리라. 시간이 흘러 고소한 팝콘 냄새와 더불어 그날의 기억은 사진처럼 떠오르지만 정작 영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더라도.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아도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커플들은 극장 데이트를 자주 하지 않는 것 같다. OTT, 유튜브로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볼 수 있고, 또 극장 말고도 즐길거리, 갈 곳이 다양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여 만만치 않은 영화 관람료도 한몫할 듯싶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까지 삼 남매를 포함한 5인 가족인 우리 집은 주말 온 가족이 영화 한 편 보러 가려면 영화비만 6만 7,000원 정도를 써야 한다. 그러나 어디 맹숭맹숭 영화만 보겠나, 팝콘과 음료수는 필수고, 이왕 외출한 김에 밥도 한 끼 먹게 되면 상당한 금액이 든다. 그나마 취향이 제각각이고 이제 거의 부모랑 같이 영화 볼 나이는 지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요즘 영화 관람료는 대략 성인 기준으로 평일 1만 4,000원, 주말 1만 5,000원이다. 여기에 3D나 4D, 아이맥스 영화라면 더 비싸진다. 그러니 대학생 큰딸은 영화 관람료가 너무 비싸다고 볼멘소리를 할밖에. 주말에 데이트하며 영화 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더욱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터득한 경제 관념 덕에(본인이 꼬박 두 시간 일해 번 노동의 대가가 영화 한 편 값이니), 웬만한 OTT 한 달 구독료보다 비싼 영화를 굳이 보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개봉 영화는 거의 모두 봤던 나의 연애 시절과 달리 딸의 연애에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이 끼어들 틈은 많지 않아 보인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OTT 대부분을 구독하고 있고, 무엇보다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며 가슴 뛰는 일이 거의 없어졌기에 나의 자발적 영화 관람은 뜸해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비교적 최근 극장에 다녀왔으니, 중학교 1학년 막내 덕이었다. 막내는 마블 덕후다. 작년까지 초등학생이었기에 그나마 나보다는 마블 영화를 좀 더 즐기는 남편이 막내와 극장을 찾곤 했다. 최근 마블 영화 개봉이 조금 뜸해 극장 갈 일이 없었는데, 얼마 전 불었던 '더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이 우리 집에도 불어닥친 것이다.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님에도 막내는 영화를 너무 보고 싶어 했다. 이미 다른 친구들은 다 봐서 같이 갈 사람이 없었고, 교묘하게 시대를 비켜가 관련 추억이 전혀 없는 나나 남편은 '더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러 막내를 데리고 극장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너무 보고 싶어 하니 그 간절함을 도저히 모른 척할 재간이 없어 결국 내가 막내와 '더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엄마가 특별히 너와 함께 봐준다고, 오만 생색을 내며.
영화를 보러 갈 때 나는'기대하면 재미없고, 기대 없으면 재미있다'라는 말을 늘 떠올린다. 말하자면 시간과 돈을 쓰며 조금도 손해 보고 싶지 않아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절대 기대하지 말자고. 그래야 최소한의 재미를 챙길 수 있을 것 같으므로. 내게 '더퍼스트 슬램덩크'는 후자였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떤 내용인지(단지 농구를 경기를 한다고 알았을 뿐)도 몰랐던 나는 영화 시작 부분, 주인공들이 스케치 모습으로 걸어나올 때 이미 매료되고 말았다(는 건 막내에게는 비밀이다). 실제 농구 경기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극장이 아닌 집에서 TV로 보았다면 느낄 수 있었을까.
사실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집에서 보는 그것과 같을 수 없음을. 오롯이 몰입 가능하게 하는 공간, 화면과 음향이 주는 압도감, 함께 간 사람과의 추억. 그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영화는 관객과 소통해 한 사람의 인생에 소소하고 또 굵은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영화는 모두 극장에서 본 것이었다. 엄마를 따라가 처음 본 영화, 단짝 친구와 본 영화, 학교 단체 관람 영화, 처음 데이트하며 본 영화, 혼자 본 영화…. 그렇게 우린 영화와 함께 나이 먹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제법 잘 살 수 있는데 익숙해졌지만 사실 재미있는 것, 가슴 뛰게 하는 것은 거의 밖에 있다. 콘서트홀, 경기장, 그리고 극장…. 그걸 잘 알지만 슬프게도 문제는 돈.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점점 신중해지고 밖을 향한 발걸음도 띄엄띄엄해질 수밖에 없다. 매달 개봉작 중 꼭 봐야 할 인생 영화를 기다리며.
틈만 나면 축구만 하던 막내는 '더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온 뒤 농구에 빠졌다. 한동안은 매일 아파트 단지 내 농구장에 가 혼자 농구 연습을 했다. 아이의 인생 한 자락에 그렇게 또 영화 한 편이 흔적을 새겼다.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어마그' 김동욱-진기주, 산 넘어 산! 예기치 못한 진실에 충격 - 아이즈(ize)
- '가면의 여왕' 김선아, 이정진과 '엔젤스 클럽'에 선전포고 - 아이즈(ize)
- '꽃선비 열애사' 신예은 조혜주, 오만석과 일촉즉발 대치현장 포착 - 아이즈(ize)
- 공백의 한 달, KIA 단장은 할 일이 많다 - 아이즈(ize)
- 봄과 여름 사이, 최정훈이 초대한 '밤의 공원' - 아이즈(ize)
- '범죄도시3'의 NEW 빌런 왜 이준혁이냐고? 마동석이 답했다 - 아이즈(ize)
- '대기록도 걸려있다' 김광현-양현종, 무려 8년만에 격돌 '최고 빅카드 성사' - 아이즈(ize)
- ATM 이강인 영입 진심, 토트넘 따돌리기 위해 바이아웃보다 많은 290억 제시 - 아이즈(ize)
- 넥스트 레벨 꿈꾸는 에스파의 첫 발걸음 [뉴트랙 쿨리뷰] - 아이즈(ize)
- '닥터 차정숙', 불륜 막장 샛길 말고 성장대로로 돌아와! - 아이즈(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