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과 집착…인간 내면의 스산한 풍경들

송광호 2023. 5. 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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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1973)는 퇴마의식을 다룬 공포 영화의 원조 격인 작품이다.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소녀와 그를 구원하려는 신부의 사투를 그렸다.

퇴마의식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신부는 모흐진느 주민들이 악마에 씌운 것이 아니라 몸이 아파서 그런 것 같다고 발표했다.

그 풍경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처럼 기괴하고, 오스카 와일드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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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영화 '엑소시스트 바티칸' 중 한 장면 [소니픽처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엑소시스트'(1973)는 퇴마의식을 다룬 공포 영화의 원조 격인 작품이다.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소녀와 그를 구원하려는 신부의 사투를 그렸다. 개봉 후 비슷한 이야기가 수없이 쏟아졌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퇴마 영화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상당 부분 이야기가 가진 힘 덕택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일부는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다.

1857년 어느 봄날, 유럽의 소도시 모흐진느에 사는 10세 여자아이 페론느는 마을 사람들이 송장이나 다름없는 소녀 한 명을 강물에서 끄집어내는 광경을 목격했다. 페론느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 페론느의 절친한 친구 플라냐도 비슷한 시기 의식을 잃었다. 두 소녀는 깨어난 후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페론느의 증상은 마을주민들에게 전염됐다. 주민 100여명이 환영을 보고, 입에 거품을 물며, 방언을 쏟아내고, 곡예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가족의 요청에 따라 모흐진느의 사제가 퇴마의식을 거행했다. 의식에 참여한 이들은 고통에 가득 찬 표정으로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퇴마의식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신부는 모흐진느 주민들이 악마에 씌운 것이 아니라 몸이 아파서 그런 것 같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다. 종교활동도 최소화했다. 상당수 주민이 정신을 회복했다. 과학자들은 모흐진느 주민들이 당시 '귀신 망상'(demonomania)이라 불리는 정신질환에 시달렸다고 결론지었다.

귀신 망상은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에 비교적 흔했던 정신질환이었다. 14세기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에서, 16세기 중반 로마에서 대유행했던 질환이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발생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책 표지 이미지 [한겨레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저널리스트 출신의 영국 작가 케이트 서머스케일은 신간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한겨레출판)에서 "모흐진느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세상을 영적으로 이해하던 시대에서 과학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는 시대로 넘어왔다는 신호탄"이라고 분석한다.

서머스케일의 신작인 이 책은 희귀하고 친숙한 공포증(phobia)과 광기(mania)에 관한 개론서다. 책은 99가지 공포증과 광기를 소개한다. 뱀 공포증과 거미 공포증같이 진화적인 본능에 따른 것부터 튤립과 허언증, 방화광같이 우리가 억누른 욕망의 산물까지를 아우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인간 내면에 감춰진 스산한 풍경이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그 풍경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처럼 기괴하고, 오스카 와일드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섬뜩하다. 영국 언론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가 2022년 선정한 올해의 책.

김민수 옮김. 35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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