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 尹 '발언' 분석하니... '민생·경제'에서 '동맹·세계'로 관심사 이동

김지현 2023. 5. 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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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간 공식 발언 단어 빈도 분석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화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1년간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을까. 윤 대통령의 지난 1년간 공식 연설 및 회의 발언을 분석하면, 취임 초기에는 '민생' '경제' 분야, 6개월쯤에는 '정책' 분야, 최근에는 '외교'로 무게추가 옮겨간 것으로 나타난다. 윤 대통령이 구상하는 국정 운영의 핵심 어젠다가 점차 변화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발언의 양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다만 원칙과 방향에 대한 얘기는 많지만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정체성은 '자유' '경제'

한국일보는 지난해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부터 올해 5월 3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개회식까지 외부에 공개된 윤 대통령의 발언 총 120건을 전수 분석했다. 각종 연설과 국무회의·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비상경제회의·정부업무보고 모두·마무리발언 등을 취합한 것으로 총 26만5,871자, 단어로는 5만3,991개에 달한다.

윤 대통령이 공식 연설 및 회의 발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우리'(1,061회)였다. 단어 사용 패턴을 분석하면 "우리 정부" "우리 경제" "우리 산업" "우리 국민" 등 강조하는 의미의 수식어로 주로 쓰여 의미 부여를 하긴 어렵다.

윤 대통령이 다음으로 많이 쓴 단어는 자유(505회), 국민(475회), 정부(462회), 경제(440회), 국가(326회), 사회(286회), 법(279회), 세계(279회) 등의 순이었다. 특히 '자유'는 주요 연설마다 가장 많이 사용돼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취임사에서만 35회, 미국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에서 46회 언급됐다. 윤 대통령이 '자유'를 말할 때 주로 의미를 실어 사용한 단어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 '자유시민', '자유주의 복원', '자유무역체계' 등으로 분석됐다. 경제를 강조할 때에는 산업(262회), 시장(257회), 지원(255회), 기업(246회), 기술(244회) 등을 함께 언급했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이 국가(326회)와 법(279회)을 자주 언급한 점도 주목된다. 법의 연관어는 공정(76회), 질서(53회), 헌법(31회), 원칙(30회), 불법(26회) 등으로 분석됐다. 윤 대통령이 '국가'를 언급할 땐 미래(151회), 안보(147회), 책임(81회) 등의 단어가 따라붙었다. 국가의 근간이 법이고,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시민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보는 윤 대통령의 가치관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윤 대통령은 2019년 검찰총장 시절 자신을 가리켜 '헌법주의자'라 칭한 바 있다.

세계(279회)의 연관어로는 연대(109회), 번영(91회), 시민(71회) 등이 있었다. 윤 대통령이 '세계의 평화와 번영', '세계 시민의 자유 확대',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 등을 거론하면서 자유의 확장을 매번 강조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통합'을 언급한 경우는 22회, '협치'는 1회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국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단어 '통합'을 사용한 사례는 드물었다. 지난해 5월 취임사에 통합이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 직후 윤 대통령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유의 가치를 강조한 게 곧) 통합의 기준과 방향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을 뿐이다. 이 외에는 주로 정부 행정시스템 통합이나 유보(유아 교육·보육) 통합 등 정책 취지를 설명할 때 쓰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 단어 사용 빈도 분석. 한국일보

尹 관심사 이동… 민생·경제→정책→외교

1년간 자주 언급하는 단어가 변화한 것도 눈에 띈다. 발언에서 사용된 중복 단어를 제외한 주요 어휘를 시기별로 분석하면, 취임 직후인 지난해 5~7월은 위기(59회), 지원(50회), 민생(42회), 코로나(31회), 소상공인(23회), 손실(23회) 등의 단어가 많이 사용됐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복합 위기 대응과 경제 성장을 위한 정부 지원 중요성 설파에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자영업자·소상공인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경에 속도를 냈고,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해관계가 맞았던 여야가 추경 처리에 전격 합의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가 고착화됐던 지난해 8~10월에는 피해(43회), 확대(39회), 대응(34회), 안전(30회) 등의 단어 사용이 급격하게 늘었다. 당시 수도권 집중호우 피해와 이태원 참사로 정부의 재난·사고 대처 능력이 도마에 오르면서 윤 대통령이 재난 시스템 개선을 집중 주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윤 대통령은 관련 발언 때마다 책임(16회), 점검(16회), 조치(15회), 개선(15회) 등의 단어를 함께 언급했다.

이 시기에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과 권성동 당시 대표 직무대행에게 보낸 '체리따봉' 이모티콘 문자 사건,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불거진 '바이든 날리면' 논란 사건도 있었다. 다만 당시 국정 운영 지지율이 최저점(24%·한국갤럽 9월 5주 기준)을 찍었어도 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입장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

공개토론 형식의 정부 업무보고 등을 통해 정책을 구체화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는 생각(166회), 정책(115회), 교육(108회), 문제(88회), 부처(83회)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교육·노동·연금 3대 개혁의 원칙과 명분, 방향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쏟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3대 개혁 중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노동개혁이었다. 윤 대통령이 '노동'(48회)을 강조할 땐 법치(11회), 불법(10회), 파업(8회), 불편(5회), 엄정(3회) 등 강경한 어휘를 주로 사용했다. 특히 3대 개혁은 입법이 필요한 과제임에도 국회(8회), 개혁안(1회), 입법(1회) 등 여야 협치 내지는 입법부 설득 노력에 필요한 단어 사용 횟수는 매우 적었다.

12년 만의 미국 국빈 방문, 일본과의 셔틀외교 복원 등 외교 이벤트를 선보인 올해 2~5월에는 동맹(113회), 민주주의(98회), 세계(94회), 함께(86회), 미국(73회), 한일(65회), 미래(65회) 등의 언급이 부쩍 늘었다. 윤 대통령이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도발로 뚜렷해진 신냉전 대결 구도에서 미국 중심 자유진영의 한 축으로 분명히 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도 과거를 딛고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명한 메시지를 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관련한 윤 대통령의 언급은 과거(16회), 강제징용(6회), 사과(2회), 반성(2회) 등에 그쳤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용 단어 빈도 시기별 분석. 한국일보

국정 운영 방향 확고해졌지만 메시지 효과는 '물음표'

윤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도 적지 않은 양의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시기별 단어량을 분석하면, 지난해 5~7월(8,832개)→지난해 8~10월(8,482개)→지난해 11월~올해 1월(2만3,871개)→올해 2~5월 1만2,806개다. 최근 외교 이벤트 등에 시간을 쏟으면서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정책을 구체화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는 이전에 비해 3배 가까운 분량의 발언을 했다. 대통령학 연구자인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원장은 "모든 대통령이 1년쯤 되면 업무를 하면서 정보가 쌓이고, 경험이 많아져서 국정 운영에 대한 자기 확신이 강해진다"면서 "과감한 정책전환을 이루기 위한 의지가 강할수록 메시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방대한 분량만큼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이 초기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 국정을 운영하면서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점차 대내외 정책 방향성을 확고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방향이 정책으로 결실을 맺으려면 국민 지지가 필수적"이라며 "양극단 정치 환경을 뚫어내려면, 디테일까지 고려한 절제된 메시지와 설득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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