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론가 김갑수, 졸혼의 이해(2)_희생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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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전체 과정에서 여러 경험을 했다.
빛나는 활동도 해보고 처참한 상황에 직면해보기도 하고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과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만큼 커 보인 일은 없었다.
이렇게 엄청난 큰일을 내가 해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희생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세상이 변했어요. 옛날보다 훨씬 오래 살고, 여자가 남자를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하는 게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죠. 그러니까 부부가 잘 살기 위해서는 절충하는 수밖에 없어요.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야죠. 결혼 초반에는 뭐가 뭔지 모르니까 그냥 정신없이 사는 거예요.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우고 공동 해결 과제가 많으니까 각자 자기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 어느 나이대가 되면 ‘나는 뭐지?’ 하는 의문이 싹트게 돼요. 물론 그걸 누르고 사는 사람도 많고, 서로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도 많아요.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죠.
사이좋은 부부도 있고, 아닌 부부도 있고. 참 다양하죠?
기질도 취향도 성격도 요구 사항도 다 다른 부부가 문제인 거죠. 그러니까 집 밖에만 나오면 자기 배우자 헐뜯기 바빠요. 억누르려고 해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거 같더라고. 남을 붙들고 하소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웃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에요. 사회가 변하면서 1인 가구도 많이 생겼잖아요. 각자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되는 거예요. 이것저것 복잡하고 불편한 게 싫다면 서로 절충안을 택해 나처럼 각거를 하든지,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다면 이혼하든지. 이혼하기에는 눈치 봐야 할 것도 많고 복잡한 게 많아서 싫은 사람은 졸혼하는 거죠.
직접 해보니 각거(졸혼)의 삶이 마냥 좋기만 한지, 아니면 누가 옆에서 좀 챙겨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는지요?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이 남편의 유형도 다양하고 아내의 유형도 다양하잖아요. 내 경우는 집안일에 전혀 관심도 없고 할 마음도 없는 아내를 선택해 결혼한 거예요. 아내가 끓인 따뜻한 된장찌개를 마주 앉아 맛있게 먹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음식 배달을 시키거나 사 먹거나 했고, 청소와 빨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줬고. 나는 애초부터 아내에게 챙김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일반적인 아내와는 좀 다르죠. 그거에 대해 나도 불만이 없었고요. 함께 살거나 떨어져 살거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사이예요.
자녀도 쿨하게 부모의 상황을 인정했나요?
우리 아들의 특징은 자신의 인생살이에만 관심이 있지 부모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입 밖으로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어요.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사는 거죠. 게다가 진로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꿔 올해 미국 유학을 가서 어차피 떨어져 지내게 돼요.
졸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적인 부분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그 부분에서 저는 좀 행운인 게 아내를 부양할 의무가 없어요. 나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버는 사람이니까.(웃음) 우리는 예전부터 경제적으로도 각자 독립체적인 삶을 살았어요. 아이 대학 학비는 한 학기씩 번갈아가면서 내고. 가정에 큰돈이 들어갈 일들이 생겼을 때 사실 내가 기여한 부분이 별로 없어요. 좀 미안하죠. 사실 남편 수입에 의존해 사는 경우, 결혼을 청산할 일이 생기면 남자 쪽에서 돈을 안 주려고 해서 문제가 많이 생겨요. 이혼소송이라도 해서 재산의 일부를 아내가 가져가야 생존이 되는데, 졸혼하면 남편이 알아서 주지 않으면 좀 애매해지죠. 물론 남자 쪽도 여유가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요. 이런 경제적인 예속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가볍게 보거나 나쁘게 볼 일이 아니에요. 누구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수치와 굴욕과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는 게 인생이니까요.
그럼 선생님도 졸혼하면서 재산 분할을 했나요?
재산 분할 할 것도 없는 게, 내 것이 없어요. 다 집사람 명의로 돼 있고 나는 없으니까. 내가 직접 장만한 좀 값나가는 스피커가 내 재산의 전부예요. 돈 벌어서 스피커 사고 LP판 사는 데 돈을 다 썼으니까요.
혼자 살면 아플 때가 제일 서럽잖아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건강을 관리해 오래 사는 풍조를 비웃는 건 아니지만, 건강관리를 위해 너무 노력하고 돈을 쓰고 시간을 들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좀 덜 건강한 채로 편하게 사는 게 나만의 건강관리라면 건강관리죠.
그래서 더 건강한 거 아니에요?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건강하지는 않지. 매일 어디가 아파요.(웃음) 그런데 아프거나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생긴다는 걸 기본으로 생각하고 살면 편안해져요.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를 정상 상태로 여기면 인생살이가 너무 괴로워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어, 문제구나’ 심각하게 여기게 되니까. 나이가 들면 몸에 잔고장이 생기는 건 당연하죠. 그래도 병원에 갔다 오면 좀 해결되고.
졸혼해보니 어떤 점이 좀 아쉽나요?
외로움. 나는 사람도 잘 안 만나는 성격이에요. 그러다 보니 늘 완벽히 혼자인 상태야. 가령 아파서 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했는데 가족에게 연락을 안 했어요. 걷는 것도 힘든데, 링거대에 링거를 걸고 혼자 수납하러 가니까 병원 직원들이 당황해요.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가족이랑 왔더라고요. 최근에 안과에 갈 일이 있었는데, 택시를 부르려면 휴대폰 화면이 보여야 하잖아요. 이게 잘 안 보여서 돋보기도 아닌 현미경 같은 루페로 간신히 화면을 보고 택시를 불렀어요. 집에 돌아갈 때도 역시 택시 부르는 게 너무 힘들어 길에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려고 했더니 전부 외면하고 가더라고요. 혼자 살면 이렇게 스스로 비참해지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에디터 : 하은정 | 취재 : 박현구(프리랜서) | 사진 : 김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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