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판매액 집계도 못 내놨다…열기 꺾인 '아트부산'
오픈런 없고 'VIP 첫날 완판'도 드물어
'화랑미술제' 이어 예년만 못한 성적표
하종현·이건용 등…'팔릴 작품'은 팔려
"미술시장, 확실한 조정기에 접어 들어"
"젊은 컬렉터 취향 다채로워져" 분석도
[부산=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출발은 괜찮았는데….” 한 갤러리스트의 흐려진 말끝엔 아쉬움이 잔뜩 묻어 있다. 입장을 위해 긴 줄을 마다않던 VIP들로 첫날 잠깐 북적였던 분위기가 끝까지 이어지진 못했다는 뜻이다. “심심찮게 눈에 띄던 ‘오픈런’도 없고, 살 사람은 다 사가는 ‘첫날 완판’도 드문 일이더라.”
‘혹시’ 했지만 ‘설마’도 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흥행보증을 담보하던 ‘아트페어’가 아니었나. 이태 전에도 그랬고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뚜껑을 열기까지가 힘들지 일단 판을 벌리기만 하면 그다음은 되레 쉬웠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걸어놓는 족족 그림은 잘도 팔려나갔으니까. 그림 파는 일보다 오히려 미술장터에 자리를 만드는 일, 그러니까 부스를 배정받는 일이 더 어려웠다는 얘기인 거다. 그런데 그 신통방통한 일, 아트를 팔고 사는 그 가장 쉬운 일에 올해는 제동이 걸린 거다.
상반기 국내 최대 규모인 아트페어 ‘아트부산 2023’이 7일 폐막했다. 국내 주요 갤러리 111곳과 해외 갤러리 34곳 등, 22개국에서 찾아든 145개 갤러리가 수천 점의 미술품을 내놓고 손님맞이에 나섰던 올해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지난 4일부터 나흘간 열린 아트부산을 찾은 관람객 수는 확실치 않다. 그저 지난해 ‘아트부산 2022’와 비교해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할 순 있다. 관람객 수만이 아니다. 그 관람객들이 사들인 미술품 판매액도 지난해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예상만 할 뿐이다. 지난해 아트부산에선 관람객 10만 2000명이 들어 미술품 746억원어치를 사갔고, 앞서 2021년엔 관람객 8만여명이 판매액 350억원을 써내며, 두 해 연거푸 ‘역대급 실적’이란 말을 끌어냈던 터.
사실 올해 ‘추측뿐인 결산’이 나온 건 행사를 주최한 아트부산 측의 ‘상황무마식’ 결정 탓이다. 올해 판매액과 관람객 수 등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입을 닫아버린 건데. 하물며 “여러 경로로 발권한 티켓의 집계가 어려워 방문객 수를 취합하는 작업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역대급’ 운운하며 관람객 수와 판매액 홍보에 열을 올렸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란 얘기다.
어쨌든 ‘예년만 못하다”는 성적표를 받아든 미술계에선 “미술시장이 확실한 조정기에 들어갔다”는 데 목소리를 모으는 모양이다. 발단은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화랑미술제’부터였다. 역시 지난 두 해 연속 끌어올린 ‘역대급 실적’에 못 미치는 성과를 냈던 거다. 해마다 가장 처음 열리는 ‘화랑미술제’가 한 해 돌아갈 미술시장을 가늠하는 ‘간 보는’ 자리쯤 된다면, 아트부산은 그해 미술시장의 판도를 확정하는 ‘양념을 투하하는’ 자리쯤 된다고 할까. 결국 올해 아트부산으로 미술시장을 향하던 열기가 제대로 꺾인 양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거다.
고가의 대작 아닌 작품에서 ‘완판’ 소식 들려
그렇다고 아트페어에 나온 미술품 모두가 찬밥신세였던 건 아니다. 대형 컬렉터에게 맡겨 놓다시피 하는 ‘개막 장사’에선 어떤 상황에 놓여도 팔리는 작품들의 저력이 도드라졌다. 국제갤러리가 하종현 ‘접합 22-28’(2022)을 7억원대에, 최욱경의 ‘무제’(1960s)를 9000만원대에, 다니엘 보이드의 ‘무제’(2023)를 2000만원대에 팔았다. 모자이크 작업으로 시선을 끈 줄리안 오피의 ‘크노케에서 걷기’(2021)는 2억 1700만원대, 알렉산더 칼더의 회화 ‘무제’(1971)는 3억 9000만원대에 팔리기도 했다. 또 리안갤러리는 김춘수의 100호 규모 작품 두 점을 3000만원대에, 김택상의 100호 규모 작품 두 점을 7000만원대에 판매했다. 여기에 갤러리스탠이 내세운 이소연·백향목, 페레스프로젝트의 전속작가 레베카 에크로이드, 애드 미놀리티, 베이롤 히메네즈 등의 작품들도 모두 첫날 판매 리스트에 올랐다.
일반 관람객이 입장한 둘째 날부터도 “팔릴 작품은 팔렸다”. 갤러리현대는 이승택의 ‘묶은 돌’ 연작을 3000만∼6000만원대에, 이건용의 ‘바디스케이프’ 신작을 3억∼4억원대에, 이강소의 ‘청명’(2018)을 2∼3억원대에 팔아냈다. 학고재갤러리는 강요배의 ‘대지 아래 산’(2021)을 2억원대에, 송현숙의 ‘17획’(2007)을 6100만원에, 토마스 샤이비츠의 ‘플로라’(2022)를 520만원에 파는 등의 성과를 냈다.
‘완판’ 소식은 되레 고가의 대작이 아닌 작품들에서 들려왔다. 초이앤초이는 매튜 스톤의 작품 8점을 태국 한 컬렉터에게 전부 넘겼고, 디스위켄드룸은 독일 신진작가 루카스 카이저의 작품을 죄다 팔았다. 또 313아트프로젝트는 우국원의 ‘그들에게 케이크를 먹게 해’ 연작의 원화(2023)와 판화(2022)를 솔드아웃시켰고, 아뜰리에아키는 콰야의 ‘잠에 빠지는 법’(2023)을 포함해 신작 5점을, 정성준의 ‘내가 잃어버린 보물’(2023) 등 신작 3점을 모두 컬렉터의 품으로 넘겼다.
아트페어 성패의 관건은 ‘젊은’…취향에 움직이는 시장
으레 아트페어라면 복닥거린다는 게 머리에 박혀 있어선가. 올해 아트부산이 첫줄에 내건 ‘축구장 3.7배 면적’(2만 6508㎡·약 8000평)은 대단히 신선했다. 지난해보다 1.5배 정도 넓힌, 국내 최대규모로 확장한 공간이 그거다. 갤러리와 관람객 모두에게 쾌적하고 여유로운 미술품 향유의 환경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였다. 덕분에 아무리 붐벼도 붐비지 않는, 오히려 지나치게 넓어 간혹 썰렁하기까지 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할까. 한 관람객은 “이제야 부스에 걸린 미술품들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더라”며 반겼지만, 한 갤러리스트는 “우르르 몰려다녔던 작년에 비해 공간이 넓어져, 가뜩이나 줄어든 손님의 빈자리가 더욱 도드라진 듯하다”며 허전해하기도 했다.
갈수록 ‘젊은’의 비중이 높아지는 아트페어의 추세는 아트부산에서도 이어졌다. 작가는 작가대로, 컬렉터는 컬렉터대로 미술시장에 차지하는 비중을 키워가며 ‘취향’을 좇는 게 보였다는 말이다. 이는 이태 남짓 전부터 미술시장의 판도 변화를 이끌어온 젊은 컬렉터가 ‘칼을 쥔’ 위치에 섰다는 동시에, 이젠 그들의 전폭적인 호응을 얻은 젊은 작가들이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작가군’으로 떴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작품을 향해 달려가는 ‘오픈런’이 사라진 것도 “젊은 컬렉터의 취향이 다채로워진 영향”이라는 미술계의 분석도 들린다. 오픈런이란 게 한 작가, 한 작품에 대다수가 집중해야 벌어질 수 있는 현상이니 말이다.
장터를 찾는 게 반드시 뭘 사야 하는 목적이 아닐 수 있는 이들을 위한 볼거리가 적잖았다. 백남준이 거대한 원에 브라운관을 들인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구-일렉트로닉 포인트’(1990 학고재갤러리), 케니 샤프가 기하학적 문양으로 조각한 미래지향적 로봇인간 집단(‘블루마마’ ‘GRR 가이’ 외 1986·2021 갤러리현대), 전광영이 커다란 쇳덩어리로 형상화한 입체작품 ‘집합 06-SE057’(2006 두손갤러리), 공간을 압도하는 노은님의 300호 대작 ‘무제’(2002 가나아트) 등은 미술관급 전시를 무기로 ‘그림장사’의 격을 높였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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