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누구도 울지 않는 밤』 김이설 “사는 게 언제 내 마음대로 흐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에 살빛 낯달이 슬퍼라 오래토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
엄마가 켜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 초등학생 그녀의 가슴에 훅, 하고 파고들었다. 묵직한 목소리와, 삶까지 딸려오는 듯한 감정선, 그리고 심상치 않는 가사까지.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였다.
옛 노래를 키워드로 몇몇 작가들과 앤솔로지 작품집을 내기로 의견을 모으자, 소설가 김이설은 임희숙의 노래를 떠올렸다. 노래 가운데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 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멈춰 섰다. 짐이 연상됐고,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힘겹게 사는 여성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평생 고단하게 사는 여성,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여자, 그래서 손톱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여성이⋯.
그는 삶의 무게를 힘겹게 감당해가는 여성을 그린 단편소설 「긴 하루」를 2021년 앤솔로지 작품집에 발표했다. 당초 노래를 키워드로 해서 작품을 모았지만, 모든 작품이 묘하게 엄마와 연관되면서 작품집 제목은 『엄마에 대하여』로 바뀌었고.
김이설의 단편 「긴 하루」는 어린 남편이 떠난 뒤 오랫동안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온 50대 여성 유순의 이야기다. 유순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고단하게 살아간다. 관계가 좋지 않던 노모는 3년 전 집으로 들어오고,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길 바랐던 딸 혜서는 10일 전 집을 뛰쳐나갔다.
“창밖이 허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두 시간 뒤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한숨도 자지 못한 유순은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노모의 쌀 씻는 소리가 천연덕스럽게 들렸다. 새벽부터 매미가 울어댔고, 유순은 아까부터 피가 맺힌 줄도 모르고 거스러미를 뜯어내고 있었다.”(325쪽)
소설가 김이설이 단편 「긴 하루」를 비롯해 지난 6년간 발표한 단편 10편을 묶은 소설집 『누구도 울지 않는 밤』(문학과지성사)을 들고 돌아왔다. 그의 네 번째 소설집.
소설집은 다양한 이유와 사연으로 지층부터 흔들리고 있는 가족,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가족과 여성들의 위기는 구성원의 외도, 천형 같은 가난, 피할 수 없는 성격 차이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적 환경 때문에 점점 더 심각해진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빠져나갈 희망은 쉬이 허용되지 않는다.
김이설이 이번 소설집에서 그리고 있는 가족과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왜 가족과 여성들의 불안한 인연에 주목하는 것일까. 김 작가를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저는 불안감을 계속 부여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 대한민국에선 계층 간 이동이 쉽지 않으니까. 아등바등 하지만, 우린 결국 월급쟁이의 자식이고, 비정규직의 자식이다. 그것이 마땅한 우리의 삶인가 싶기도 하고, 이게 맞나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새벽 4시에 집을 뛰쳐나간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엄마 나 잘 살고 있어, 라는 전화는 아닐 것이다. 결국 딸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비록 엄마는 고생했지만 딸은 잘 살 거야, 라는 이야기는 드라마에나 있는 얘기지, 현실에선 힘든 일이지 않을까.”
소설집을 여는 작품 「모면」은 형부의 분양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성 소영의 이야기다. 소영은 형부가 외도를 하고 있고 언니 역시 형부의 외도를 모르는 척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이모와 아버지의 부적절한 관계를 떠올리는데.
“좋아, 그래서 밝히면? 지난 세월의 잘잘못을 따진 다음엔? 신고라도 해? 엄마는 잘못했다고 하겠지,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지. 용서할 수 없다면 우리가 벌이라도 줘야 하니? 아님 엄마는 버리고 이모만 모실까? 우리 식구들 때문에 그렇게 된 이모만 감싸면 해결이 되겠어? 누군 비겁하다는 걸 몰라서 입 다물자는 게 아니잖아.”(34쪽)
―소영과 언니 모두 형부의 외도를 모르는 척 하는데.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마음 아닐까. 다 드러내면 감당할 수 없으니까 알면서도 덮고, 덮으면서 또 아파하는 마음일 것이다. 다 밝혔을 때 더 큰 상처를 받을 것을 알기에 알면서도 덮어야 되는 것들이 있다. 파국이 두려워서 비겁한 길을 가는 것이다. 살려면 눈 감아야 되고 거짓말도 해야 되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두 사람은 계속 외면할까) 아마, 그럴 것이다. 언니는 현재 경력이 단절돼 있어서 자신의 현재를 잃고 싶지 않을 것이고, 생계도 유지해야 될 것이고. 동생 역시 언니가 원하는 대로 밝히지 않을 것이다. 비겁하지만.”
「가족의 탄생」은 하루에 배달 50건을 채워야 생활이 가능한 배달 라이더 정균의 이야기다. 정균은 은주가 동거남의 아기를 임신한 것을 알고도 사랑하기에 그녀와 가족이 됐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가출하던 은주는 결국 여섯 살 된 아이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는다.
―이 소설은 어떻게 나왔는가.
“소설은 주제로부터 오기도 하고, 인물이나 어떤 직업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우선 팬데믹으로 힘들 당시 배달 라이더라는 직업을 한번 쓰고 싶었다. 당시 지방에 사시는 라이더 분들은 콜 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도시로 와서 숙소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기러기 부부처럼 떨어져 살다보니 더러 가정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또 그와 동시에 자신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키워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었다. 두 가지를 가지고 만들게 된 작품이다. 그러니까 내 아이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인물을 배달 라이더로 해서⋯.”
―은주는 왜 습관적으로 가출하는지.
“은주는 자신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거나 혹은 버거운 삶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인물로 설정했다. 정균이 좋고 지금의 삶이 좋지만, 그럼에도 정균의 아이가 아니어서 가끔 답답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균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도 있지만,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이전 동거남과 연락이 됐거나 만났을 수도 있다. 다만 정균의 시점으로 쓰다 보니 은주의 마음 속 깊히 들어가진 못했다.”
「환기의 계절」은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27년 만에 병들고 늙은 몸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준다. 외도하는 남편에게서 이혼까지 요구받는 장녀인 나는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얼마 뒤 아버지가 쓰러지고 나서야 엄마에게서 아버지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나 역시 엄마에게 위기의 상황을 털어놓는데.
―할 수 없지. 그건 또 걔의 인생이니까.
―엄마⋯.
―사는 게 언제 내 마음대로 흐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네 아버지가 다시 나에게 돌아올 줄 어떻게 알았겠어.”(153쪽)
―「환기의 계절」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된 것인가.
“제목이 먼저 나왔다. 팬데믹 당시 맨날 들어야 했던 단어가 굉장히 좋았다. 사실 인생의 공기를 바꾸거나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나이가 더 들수록 관념이나 해오던 일을 바꾸긴 어렵다. 그래서 환기를 다짐하는 일들이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하다가 쓰게 됐다. 거기에 아버지가 동성애자이고, 이것을 알게 되는 자녀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엄마는 사는 게 맘대로 안된다고 했는데, 과연 ‘나’는 견뎌낼 수 있을까.
“소설집의 인물 중에서 가장 미련한 인물이긴 하지만, 이 친구는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딸들은 엄마랑 닮기 싫어, 라고 표현하는데, 이 친구는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표현한다. 엄마처럼 굳건히 살겠다는 의지여서 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있는데,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악전고투하는 50대 유순(「긴 하루」), 형부의 부정을 외면하는 소영(「모면」), 힘겹게 사는 배달 라이더 정균(「가족의 일생」), 동성애 아버지를 대면하는 맏딸(「환기의 계절」) 등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이 하나같이 녹록치 않다.
“등단 초기였다면, 아마 인물들이 다 까발리고 죽이러 가던가, 피가 낭자한 풍경으로 끝냈을 것이다. 그땐 날이 퍼렇게 서 있었다. 한 십여 년간 인물들을 참 악랄하고 잔인하고 힘들게 만들었다(웃음). 한 대 맞으면 한 대 쳐야 하고, 눈물 흘리게 하면 피눈물 흘리게 해야 되고, 그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안 돼, 너도 때려야 돼, 라는 어떤 선언이나 주장을 하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위악적인 인물들도 과감히 그렸다. 하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서 많이 순해지고 흐려진 것 같다. 좀 무뎌지고 둔해지고, 돌려 말하기도 한다. 이해 못할 게 없어졌다. (초기 소설과 지금 소설의 차이는 결국 작가 김이설의 격차, 변화일 텐데)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 3, 4년 글을 못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을 겪으면서 글의 색감이 많이 바뀌었다. 날선 글들을 썼지만, 저를 다 갈아서 쓴 것이어서 스스로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쓰면 남아나질 않겠구나 하는 방어 기제도 생겼고, 그렇게 쓰는 걸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도 같다. 일단 나이가 들어서 이해 못할 게 없다는 마음도 들면서 좀 무던해진 것도 있고. 그것만이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지금은 내가 한 대 더 맞아도 괜찮을 것 같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 차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작가의 말」에서 “글을 못 쓰던 시절이 있었다. 아프기도 했다. 이제껏 믿었던 세계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그동안 써온 내 소설을 부정하는 일도 겪었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두 번째 단편집 『오늘처럼 고요히』를 내고 2016년, 2017년쯤 번 아웃이 심하게 왔다. 그래서 연재를 펑크 내고, 마감을 지키지 못해서 출판사에 물의를 일으키고, 병원 다니고⋯. 그냥 텅 비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아이디어도 없었고, 글도 읽히지 않고, 써지지도 않았다. 되돌아보니까, 그 동안 너무 소진한 것 같았다. 아이를 낳으며 등단했는데, 아이를 기르며 계속 글을 쓰면서 너무 저를 갈아 넣은 것 같았다. 또 하나는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면서 제가 썼던 글들이 부정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잔인한 것은 잔인한 대로 작품에 다 드러내는 게 리얼리즘이고, 각성과 환기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여성을 성적 도구화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시야가 조금 넓어진 느낌이 든다. 지금은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고, 내가 꼭 때리지 않고 맞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면도 보고, 다른 쪽도 볼 수 있는 좀 익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어떤 독자들은 여전히 날 서 있는 소설들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제 작가정신이 무뎌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하도 닮은 데가 없으니까, 그 남자가 의사인 친구에게 뭐라고 말한 줄 알아? 토목 일 때문에 오랫동안 지방을 전전했던 아빠는, 집에 돌아오면 어린 그녀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남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토끼눈이 돼 아빠의 입을 올려다봤다. 발가락이 닮았대, 하고 웃었대.
딸은 중학생이 돼서야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모두 ‘원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한국 근현대 단편소설들이었다. 발가락 이야기의 원작 역시 김동인의 단편 「발가락이 닮았다」였다. 발가락이 닮았다고 말하며 웃었던 남자가 생식능력이 없음에도 아내가 임신하자 충격을 받은 M, 자신의 자식이 아니지만 “발가락이 닮았다”며 자신을 기만하면서 스스로를 구원하려한 M이었다는 것도.
이런 얘기였구먼. 중학생 김이설은 자신의 무릎을 딱, 하고 쳤다. 아버지는 그녀의 나이에 맞게 단편소설을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각색해 들려주신 것이었다. 야한 대목이나, 잔인한 장면은 다 빼고.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좇아서 한국 단편소설을 찾아 읽어갔다. 「감자」, 「표본실의 청개구리」, 「배따라기」, 「봄봄」⋯.
아빠는 또 일하러 지방에 가면 꼭 현지에서 편지를 써서 보내곤 했다. 집으로만 보낸 게 아니었다. 학교로도 보냈고, 심지어 학원으로도 보냈다. 엄마는 그녀를 가족 대표로 지목, 아빠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라고 했다. 남아 있는 가족의 대표로서 그녀는 아빠에게 답신을 보냈다. 답신을 받은 아빠는 다시 또 편지를 보내왔고, 그녀는 다시 또 답신을 보내야 했다. 아빠는 계속 편지를 보내왔고, 그녀 역시 계속 편지를 써야 했다. 대학교 때까지도 쭉.
그런데 편지라는 게 또 묘해서 얼굴을 마주 보고 할 수 없는 말도, 이야기도 하도록 만들었다. 아빠도 그렇고, 그녀 역시 그랬다. 편지를 주고받고 다시 답신을 보내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필담을 하고 있었다.
아빠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고, 글을 쓰는 게 두렵지 않게 됐다. 문학이 좋았고, 국어가 좋았고, 글 쓰는 게 좋았다. 고등학교 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글 쓰는 삶의 언저리에 살겠노라고 생각했다. 소설가 김이설의 원점이었다.
스무 살 무렵,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1996년 명지전문대 문창과에 입학해 정식으로 소설을 배우기 시작한 뒤, 졸업과 엄마의 병간호, 결혼 등을 거치면서도 10년간 꾸준히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신춘문예는 쉬 지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 친정에 가기 전, 그녀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응모했다. 아기 낳고 보름 뒤, 당선 소식을 들었다.
1975년 예산에서 태어난 뒤 서울에서 자란 김이설은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오늘처럼 고요히』, 『잃어버린 이름에게』, 경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등을 펴냈다. 황순원신진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햇빛을 좀 덜 받는 사람들,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계속 그러고 싶다. 고단한 너희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단한 우리의 이야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일상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소설 쓰기의 방법이나 원칙이 있다면.
“얼마나 사실적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본은 리얼리즘이고 개연성이다. 또 하나는 독자가 읽고 나서 맞아, 우리 세상이 이렇지, 근데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잘 살고 있나,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소설, 질문을 품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구현이 잘 되고 있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이나 작가로서 비전은 무엇인가.
“계속 현장에 있는 작가, 계속 쓸 수 있는 작가이고 싶다. 그냥 서점에 책이 있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제일 힘든 일이겠지만, 사라지지 않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작품이 계속 발전해 부끄러움이나 창피함이 조금씩 덜해졌으면 좋겠다. 잘생긴 소설보다 좋은 소설로 발전돼 갔으면 좋겠다.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요즘 젊은 독자들에게 어필이 될 수 있을까,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제일 고민이다.”
오전 7시에 일어나서, 아이들을 학교 보낸 동시에 카페에 가서 소설을 쓰거나 소설수업 준비를 합니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 2시쯤 다시 카페에 가서 소설을 쓰거나 소설수업 준비를 하고요. 오후 6시, 집에 돌아와서 집안일을 하고 저녁 먹은 뒤 쉬다가⋯.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었다. 기사가 잘 써지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의 하루 루틴을 대답한 뒤 뒤따라온 김이설 작가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루틴을 갖기 위해 무려 16년이 걸렸다는. 두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카페에 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아~ 저 하늘에 구름이나 될까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성문의 빗장이 풀린 것처럼 허둥지둥했던 인터뷰의 마지막이, 임희숙의 묵직한 목소리와 희미하게 겹쳐졌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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