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전 총리 체포 후 폭력시위 격화···경제난·정국혼란 가속

이윤정 기자 2023. 5. 10.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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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경찰이 임란 칸 전 총리를 지지하며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에게 9일(현지시간)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EPA연합뉴스

임란 칸 전 파키스탄 총리가 부패 혐의로 9일(현지시간) 체포된 뒤 파키스탄 곳곳에서 폭력 시위가 잇따르면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다. 규제당국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차단했으며 사립 학교들은 10일 휴교령을 내렸다.

시위 격화로 4명 사망···당국, SNS차단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칸 전 총리가 이날 부패 혐의로 전격 체포된 뒤 파키스탄 주요 도시를 포함해 사실상 전역에서 그를 지지하는 군중들이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섰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차량이 불타고 공공 기물이 훼손되는 등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시위대는 경찰차를 불태우고 군 관련 시설도 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발루치스탄주의 수도인 퀘타를 비롯해 카라치, 페샤와르, 라왈핀디, 라호르 등 주요도시에서 시위대와 군대가 충돌하면서 최소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강경대응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파키스탄 정부가 수도인 이슬라마바다를 비롯한 주요도시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은 SNS와 인터넷 서비스 등 통신망을 차단했다고 전했다. 사립학교들은 10일 휴교할 것으로 알려졌다.

임란 칸 총리 체포로 분열된 파키스탄

가디언은 “크리켓 스타 출신으로 한때 국민 영웅으로 불리던 칸 전 총리가 현재는 파키스탄을 분열시킨 장본인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2018년 ‘부패 척결’을 내건 포퓰리즘정당인 ‘파키스탄정의운동(PTI)’의 승리로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칸 전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탄탄하지 않았다.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 출신 스타 운동선수로 독실한 무슬림 신자가 아니었던 그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반서방 기조를 내세우며 민족주의적 의제를 앞세웠다. 가디언은 대중적 인기는 높았지만 정치적 입지가 약했던 칸 전 총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군부의 지지 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점차 칸 전 총리가 군부와 틀어지면서 칸 전 총리와 군부 간 균열이 생겼다고 전했다.

칸 전 총리는 경제 파탄과 부패 문제로 지난해 4월 의회에서 불신임당했다. 그는 현재 외국 관리에게서 받은 고가 선물 은닉, 부당 이익 취득 등 다수의 부패 혐의를 받고 있다.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관련 혐의를 인정하며 칸 전 총리를 두고 5년간 공직 박탈을 결정했다.

칸 전 총리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장외에서 수사 및 재판 거부를 이어갔다. 또 미국 등 외국 세력의 음모로 총리직에서 밀려났다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을 이끌고 시위를 벌여왔다. 그는 지난해 11월 유세 도중 총격으로 다리를 다치자 현 정부와 군부가 암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칸 전 총리는 이날 수도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 청사 밖에서 부패방지기구인 국가책임국(NAB)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칸 전 총리는 이날 보석을 요청하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칸 전 총리가 체포되자 PTI 고위 관계자들은 “칸은 고문당했고 체포됐다”, “칸은 납치당했다” 등 공세를 벌이며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

경제난·대홍수 이어 정국 혼란 가속

파키스탄 주민들은 이미 경제난과 대홍수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중국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인한 대외 부채 문제에 시달리다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이어지면서 경제는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지난해 대홍수를 겪으면서 더욱 추락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작년 6∼9월 최악의 몬순 우기 폭우가 발생,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대홍수로 약 1700명이 숨졌고, 3300만명이 홍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됐다.

물가는 지난해 6월 이후 9개월 연속 20% 넘게 올랐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6.4%로 치솟아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월 기준 외환보유고는 43억 달러(약 5조6900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약 한 달 치 수입액을 충당할 수 있는 규모다.

파키스탄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 협상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 파키스탄은 2019년 IMF와 구제금융 지원에 합의했지만, 구조조정 등 정책 이견으로 인해 전체 지원금 65억 달러(약 8조6100억원) 가운데 일부만 받은 상태다.

하지만 칸 전 총리가 이번에 체포되며 파키스탄 정국은 더욱 불안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파키스탄은 오는 10월 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가디언은 “일부 비평가들은 칸 전 총리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지지자들을 선동했다고 비판하고 있다”면서 “조기 총선을 요구한 칸 전 총리는 지지자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자신이 선거에서 우승할 수 있다며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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