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내게 준 것, 이제 산에 돌려줍니다" 전재산 산악회에 기부하고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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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악회 종신회원 권정달(82)씨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변기태 한국산악회장은 "산악계에서 개인의 거액 기부, 특히 전 재산을 기부한 분은 권정달 선생님이 처음이다. 많은 산악인들이 산을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이런 기부가 다른 어떤 단체보다 많이 있어야 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권 선생님이야말로 산에 진심인 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산악계 후배로서 숙연한 마음이다. 권 선생님의 산을 향한 진심이 우리 산악계에 널리 전파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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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악회 종신회원 권정달(82)씨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외지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강릉 토박이다. 20대부터 한국산악회 강원지부에 몸담으면서 팔십 평생을 친자식처럼 산을 사랑했다.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언제나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지요. 그래서 자꾸만 산을 찾았던 것 같아요."
필자가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의지한 그를 강릉아산병원 라운지에서 만났다. 귀를 가까이 대지 않으면 무얼 말하는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그는 기력이 떨어져 있었다. 지병으로 투병 중인 그는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지만 한마디 한마디 허투루 내뱉지 않고 또박또박 조심스러운 걸음을 떼듯 말했다.
그가 처음 산에 오른 것은 1956년 15세 때였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산에 올랐다. 가장 자주 오른 산은 설악이며, 가장 좋아하는 산도 설악이라고 했다. 공룡능선을 각별히 좋아해서 몇 번이나 탔는지 셀 수 없다고 했다. 설악산을 말할 때 그의 얼굴은 처음 산에 올랐던 15세 소년으로 돌아갔다.
그는 강릉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암벽등반과 워킹산행을 하다가 대관령산악회를 만들었고, 50년 전 한국산악회 강원지부 창립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강원지부는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산은 권정달씨에게 신앙과 같은 존재인 듯했다. 그 신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혹은 산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는, 소박한 다짐 같은 것으로 보였다.
공직자로서 산악인으로서 평생을 흐트러짐 없이 살아온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한국산악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투병에 쓸 약간의 병원치료비만 남긴 채 살던 집과 임야와 전답, 그리고 현금 4억5천만 원 등 가지고 있던 모든 걸 한국산악회를 위해 내놓았다. 1남3녀의 자녀들도 흔쾌히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재산뿐만이 아니다. 그는 "평생 산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장비와 함께했지요. 값비싼 것은 아니지만 요즘에는 보기 힘든 장비일 텐데 이것도 산악회에 기증할 거예요."
그는 이 땅의 산들을 사랑했고 그중에서도 설악을 마르고 닳도록 올랐다. 비록 말하지 않았지만 표정속에서 산이 말없이 베풀어준 것들에 그는 한없이 감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낌없이 준 산을 위해서 이제는 그가 산을 위해 모든 걸 내놓았다.
변기태 한국산악회장은 "산악계에서 개인의 거액 기부, 특히 전 재산을 기부한 분은 권정달 선생님이 처음이다. 많은 산악인들이 산을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이런 기부가 다른 어떤 단체보다 많이 있어야 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권 선생님이야말로 산에 진심인 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산악계 후배로서 숙연한 마음이다. 권 선생님의 산을 향한 진심이 우리 산악계에 널리 전파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정달 선생은 기자와 인터뷰 후 지난 5월 6일 지병과 오랜 투병 끝에 별세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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