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몽산포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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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급격히 더워져 곧 여름인가 싶다.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늘 몽산포에 갔다.
아버지는 매번 신세지기 미안하셨는지 어느 여름엔 큰댁에 알리지 않고 몽산포 캠핑장에서 숙박을 하려다 당숙에게 딱 걸려서 큰할아버지 댁으로 붙잡혀 갔다.
마치 우리 당숙모가 여름마다 우리를 반겨준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마음 씀이 후했을 따름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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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급격히 더워져 곧 여름인가 싶다.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늘 몽산포에 갔다. 몽산포 해수욕장은 모래밭이 아주 넓고 깨끗했다. 수심도 얕고 완만해서, 썰물에는 바다쪽으로 한참 걸어 들어가도 아홉 살 아이의 가슴께 밖에 물이 차지 않았다. 너른 갯벌에는 자그마한 게며 소라며 조개가 가득하니 어린아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기 참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큰할아버지 댁이 근처에 있어, 초등학교 다닐 동안은 매년 몽산포를 찾았다. 지금 생각하니 매해 내색 않고 반겨 주신 큰할머니와 당숙모에 참 감사한 마음이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서 호되게 욕을 먹을 일일 수도 있다. 아버지는 매번 신세지기 미안하셨는지 어느 여름엔 큰댁에 알리지 않고 몽산포 캠핑장에서 숙박을 하려다 당숙에게 딱 걸려서 큰할아버지 댁으로 붙잡혀 갔다.
다음날 아버지와 다른 일행은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수영을 못하는 나와 엄마는 얕은 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혼자 놀다 심심해져서 헤엄 연습을 한다며 튜브를 벗어 던졌는데, 순식간에 물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운 나쁘게 아래에 웅덩이가 있던 모양이었다. 바로 앞에 엄마가 있어 무섭진 않았지만, '엄마, 도와주세요'는 커녕, '엄'을 외칠 겨를도 없이 얼굴이 물속에 잠긴다는 게 문제였다. 다행히 한참 발버둥을 치니 엄마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셨다. 아이에게 엄마는 솔루션 그 자체다. 이제는 살았구나 안심하는데 엄마가 도무지 내 쪽으로 다가오시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론 몇 초였다는데, 내게는 몇 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망설임이 보였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더니'. 나는 마음을 내려놓은 사이, 다행히 엄마가 다가왔다. 가느다란 엄마 팔에 매달려 나는 무사히 구출되었지만, 마음에는 그늘이 생겼다. 엄마가 어떻게 망설일 수가 있지? 몇 날을 괴로워하다 엄마에게 물은 말은 공포영화 대사 같은 것이었다. "엄마, 왜 나를 (바로) 구하지 않았어?"
엄마는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키 작은 당신도 빠지는 상황이 될까 두려웠고, 내가 당장 위급한 것 같지는 않아서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을까 누가 나타날 때까지 주시하며 기다리는 것이 좋을까 몇 초 고민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보며 가늠해보니 엄마가 빠질 깊이는 아닌 것 같아 나를 건지러 오셨다고 한다. 엄마의 답은 합리적이었지만 실망스러웠다. 엄마의 입장에선 당신의 목숨도 중요하고, 보살펴야 할 다른 가족도 고려해야 함이 옳은데,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지 않은 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한참 들도록 세상 홀로 사는 것 같아 참 외로웠다.
나는 은연중에 정신 잃은 모정을 정상적인 모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 헌신하신다.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이상했다. 우리가 항공기에 타서 기내안전교육 영상을 시청하면, 응급상황에 산소마스크는 반드시 보호자가 먼저 착용한 다음에 자녀가 착용할 수 있게 도와주라고 강조한다. 순식간에 정신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보호자가 먼저 안전해야 자녀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알고 보니 정말 현명한 엄마였다. 부모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어보니 그렇다.
부모의 사랑과 헌신은 감사한 것이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마치 우리 당숙모가 여름마다 우리를 반겨준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마음 씀이 후했을 따름인 것처럼. 가정의 달이라지만 온갖 기념일을 챙기느라 정작 마음은 피폐해진다는 친구의 말이 가슴 아프다. 서로 각자 현명한 부모로서 또 현명한 자녀로서 충만한 가정의 달을 즐길 수 있는 풍토가 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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