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손발 잘라 마약수사 못 해?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팩트체크]

장나래 2023. 5. 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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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검경 수사권 조정이 '마약 수사를 위축시켰다'고 전 정부를 탓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달 "지난 정부에서 마약 단속을 좀 느슨하게 했고, 대형 마약 수사를 주도해오던 검찰의 손발을 잘랐다. 마약 거래 등에 위험 비용이 대단히 낮아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 장관은 2021년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이 500만원 이상 마약 밀수·소지 관련 범죄만 수사할 수 있게 된 점을 근거로 '검찰의 손발을 잘랐다'는 주장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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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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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검경 수사권 조정이 ‘마약 수사를 위축시켰다’고 전 정부를 탓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달 “지난 정부에서 마약 단속을 좀 느슨하게 했고, 대형 마약 수사를 주도해오던 검찰의 손발을 잘랐다. 마약 거래 등에 위험 비용이 대단히 낮아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500만원 미만 마약범죄, 수사권 조정 이전에도 검찰이 안 해”

한 장관은 2021년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이 500만원 이상 마약 밀수·소지 관련 범죄만 수사할 수 있게 된 점을 근거로 ‘검찰의 손발을 잘랐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이 조처로 검찰의 손발이 ‘잘렸’는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수사 범위가 축소되기 전에도 검찰은 주로 500만원 이상 마약 사건에만 집중해왔다는 게 함께 마약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관세청의 설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법무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검찰이 금액 무관 모든 마약 사건을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전히 500만원 미만의 마약범죄는 관세청과 경찰이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마약 수사 부서 고위 간부 출신인 한 경찰관은 “검찰에서 단순 투약자 수사는 수사권 조정 이전에도 거의 하지 않았고, 시행령 개정 이후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약 밀수·유통 조직의 경우 국내 시가로만 따져도 500만원을 대부분 훌쩍 넘어 수사권 조정과 무관하게 검찰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마약 업무를 담당하는 관세청 한 인사도 “검찰이 금액 무관 모든 마약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500만원 미만 사건은 우리가 단독으로 수사해 검찰에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가격을 수사 기준으로 삼은 것 자체가 문제”라며 “검사가 (500만원 기준에 맞춰) 밀수범을 검거한 경우, 함께 투약한 인물 등을 직접 수사하지 못하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해야 했기 때문에 ‘수사 지체’ 우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통합, 2020년 대검 마약·조직범죄과 통합으로 수사 역량이 축소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9일 <한겨레>가 연도별 전국 검찰의 마약수사직 인력을 살펴보니, 지휘 조직 통폐합과 무관하게 전체 수사 인력은 오히려 다소 늘었다. 2017년 288명에서 2018년 294명, 2019년 296명으로 증가한 뒤 2022년까지 296명을 유지했다.

마약사범 검거도 ‘추세적 증가’

‘마약 단속을 느슨하게 했다’는 주장과 달리 마약류 사범 검거 실적은 해마다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물론 수사를 느슨하게 했어도, 워낙 마약사범이 많아 검거 실적이 증가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해마다 역대 최대치 경신과 ‘수사를 느슨하게 했다’는 주장이 양립하는 것은 어색해 보인다.

검찰은 2018년 1만2613명, 2019년 1만6044명, 2020년 1만8050명, 2021년 1만6153명, 2022년 1만8395명의 마약사범을 검거했다. 경찰은 2018년 8107명, 2019년 1만411명, 2020년 1만2209명, 2021년 1만626명, 2022년 1만2387명을 잡았다. 검경 모두 매년 역대 최대치 기록을 세웠다. 2021년이 2020년 대비 소폭 감소하기는 했다. 경찰은 ‘버닝썬 사태’로 2020년 집중 단속이 이뤄졌던 ‘기저효과’ 탓이라고 설명한다.

검찰의 수사력 공백 탓에 마약 공급이 늘었고, 이 때문에 마약 가격이 싸졌다는 주장도 검증이 필요하다. 한국은 마약 ‘제조국’이라기보다 ‘수입국’이다. 수입 물량이 늘면 가격이 내리고, 수입 물량이 줄면 가격이 오른다. 국경 통제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 밀수 단속은 주로 관세청 업무인데다, 최근 밀수 규모가 대형화되고 있어 500만원이라는 수사 기준의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 내 마약수사직 인력 변화 추이. 검찰은 마약 관련 조직을 통합해 ‘손발’이 잘렸다고 했지만, 관련 인원이 줄어든 바 없고 일부 늘기도 했다. 대검찰청 제공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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