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엔 있고 매직패스엔 없는 것[오늘을 생각한다]
내가 어릴 적 알던 마법이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거나 장미가 비둘기로 변신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돈을 더 내고 줄을 안 서는 티켓을 ‘마법’이라고 배운다. 지난 4월 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돈을 더 내면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는 놀이공원 상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프로그램에서 정재승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들이 정당한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원하는 재화를 돈 주고 사는 건 당연하다”, “불편하면 북한으로 가라”는 등의 반론이 쏟아졌다. 한 경제지 칼럼은 “(아이에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적절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가르치고 싶다”고 썼다. 아이들에게 인생의 진실을 빨리 알려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동심의 세계를 일종의 부조리한 세계로 인식하는 듯하다.
‘매직패스’라는 이름은 (동심 앞에서조차) 조금의 망설임도, 물러섬도 없는 시장지상주의의 위세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매직패스의 논리를 방어하기 위해 유사한 사례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비행기, 기차, 경기장… 그런데 증거를 들여다볼수록 알게 되는 것은 돈으로 줄서기를 면제받을 기회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국의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매일 아침 줄 서서 지하철을 타거나 줄을 지어 차선을 타고 이동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줄을 서서 식당에 들어간다. 선착순의 평등은 여전히 사람들의 공통감각이며 ‘새치기 상품’들은 도전자의 입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자연법칙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런 상품들은 자본주의 본토 미국에서도 30~4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경제학자들은 새치기 상품들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레고리 맨큐는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가 실제로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며 암표상의 미덕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놀이공원들은 암표상을 장려하고 대학들은 입학권을 경매에 부치면 어떨까.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놀이공원이 일반 이용자들의 기분을 고려해 새치기 상품 구매자들을 별도의 통로로 이동시키며, 미국의 대학들은 기여입학제도의 존재를 일반 재학생들에게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매직패스에는 없는 ‘암표의 염치’다.
미국에서는 대학 입학증을 돈으로 살 수 있다. 인도에서는 대리모가 합법이다. 이것들이 허용된 논리는 매직패스 옹호자들의 논리와 얼마나 다른가. 무엇이 시장에 맡겨야 할 재화이며, 무엇이 사회적 재화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장원리를 자연화해 우리의 생각을 의탁하지 않는 일이다. 마이클 샌델 미 하버드대 교수는 “현대 정치학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시장의 역할과 그 영향력의 범위에 관한 논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줄서기의 윤리에 관해 질문한다는 이유로 “북으로 가라”는 비난을 듣는 사회에서 그런 토론은 불가능하다.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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