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입니다 - 자연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일상[시네프리뷰]
2023. 5. 10. 07:03
영화는 사저 건너편에서 보수 유튜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도 BGM처럼 담았다. 그럼에도 묵묵히 나무를 심고 풀을 뽑는 문재인 전 대통령. 거기에 문 정부 때 주요의사결정 뒤 ‘일화’들을 당시 청와대 인사들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제목 문재인입니다(This is the President)
제작연도 2023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5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창재
출연 문재인 외
개봉 2023년 5월 10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제공/배급 (유)엠프로젝트
제작 다이스필름
고민했다. <문재인입니다> 시사회가 있던 날 오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약칭 <가오갤>의 시사회가 잡혔다. 마침 제작하는 잡지가 윤석열 집권 1년을 주제로 관련 기획기사를 펼치기로 해 이 코너에서도 문재인 대통령 퇴임 1년에 초점을 맞춰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일찍부터 시사회를 신청해 놓은 참이었다.
영화가 소구력을 가질 관객층은
우려했던 대로 시사회장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역시 <가오갤> 때문일까. 영화를 보러가며 ‘이 영화는 어떤 사람들에게 소구력을 갖는 영화일까’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4월 말 조사해 5월 3일 발표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중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16%로, 노무현 30%, 박정희 23%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윤석열 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10%다. 참고로 이 조사는 대통령 개개인을 따로 조사한 것이 아니라 ‘여덟 명의 전·현직 대통령 중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그러니까 영화를 보러갈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거나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팬덤을 넘어서는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예컨대 자막에서 기자 출신으로 표기된 강민석의 문재인 정부 당시 직책은 대변인이었다. 역시 문재인 대통령과 같이 변호사 활동을 한 것으로 나오는 김외숙 변호사의 표기되지 않은 직책은 ‘전 법제처장이자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이다. 영화는 지난 5년간, 그리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부산에서 ‘변호사 문재인’과 함께했던 사람들까지 찾아가 그 주변 인사들의 회상을 담은 역사의 기록이다. 영화에는 문재인 대통령 사저 건너편에서 “문재앙 사형” 등 극단 주장을 폈던 보수 유튜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역시 BGM처럼 같이 담겼다. 그럼에도 입을 꾹 닫고 묵묵히 나무를 심고 풀을 뽑는 문재인 전 대통령.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자연과 동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생활이 퇴임 후 양산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영화는 묵묵히 느린 템포로 기록한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의 잔잔한 일상. 거기에 문재인 정부 때 내린 주요의사결정 뒤의 ‘일화’들을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보수 유튜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공해’에 묵언수행을 깨고 부인 김정숙 여사가 분노해 쫓아가는 장면 역시 순간 포착한다. 서글픈 만화경이다. 극단적으로 갈라져 서로를 악마화하는 한국 정치 내지는 팬덤의 민낯을 드러낸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되새기는 이들은 4년 후 퇴임할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겪을 모욕과 고난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절정부에서 문 대통령 자신의 말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퇴임 전날 오후 6시, 청와대에 들어간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퇴근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저는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까?”
‘성공한 대통령이었을까’라는 화두
퇴임 후 1년이 지났다. 그의 뒤를 잇는 민주당 정부, 민주당 측 수사로 ‘민주정부 4기’를 창출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 실패한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언급하듯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현 대통령’이 반대 정파로 넘어가 반문(反文)을 내세워 대통령이 된 초유의 사건을 예견하지 못했다. 아마 훗날 사가들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을 대목이다.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영화에 출연한 청와대 인사들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선한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일찍이 마키아벨리도 설파했듯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다”(<군주론> 15장). 물론 군주는 선한 의지를 가져야 하지만 그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악함을 이해하고 때로는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군주가 가져야 할 자세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감독의 두 대통령 영화에 나오는 전직 대통령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됐는데 회사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다. 예컨대 기자도 과거 기사를 썼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중앙지검장, 그리고 검찰총장 천거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렸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역할 같은 건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영화에서도 묘사가 돼 있는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청와대 전·현직 직원들이 마련한 자리에 양 전 원장도 참석했다. 기자와 만난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양 전 원장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후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그랬듯,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청와대에 안 들어간 대신 퇴임 후 낙향하면 비서실장 자리를 맡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적이 있다. 그 바람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감독의 전작은 <노무현입니다>(2017)이다. 이 작품은 따로 리뷰하지 않았고, 나중에 개봉 후 가족과 함께 봤다. 노 대통령의 사망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영화의 중심내용은 2002년 경선 과정에서 ‘노풍(盧風)’의 등장을 다뤘다. 아마 생전의 노 대통령도 가장 자랑스러워했을 때일 것이다. 영화의 트레일러, 그리고 엔딩 장면에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명함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사진). 행인들은 ‘미래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몰라보고 불쑥 내미는 명함을 받지 않고 외면하고 피해 간다. ‘수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 대통령은 홀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간다.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고향집 하늘 위엔 굴뚝 연기가…” 1980년대를 풍미한 운동권 노래 <선봉에 서서>다. 아마도 3당 합당 후인 1992년 부산 동구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을 때 찍힌 숏일 것이다. 30년 후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은 퇴임 후 자신의 집 안마당에서 농사일을 하며 보수 유튜버들의 확성기 조롱을 듣고 있다.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장면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운이 남는 영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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