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전직 대통령 최초의 ‘성범죄자’ 됐다

김유진 기자 2023. 5. 10.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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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만장일치 유죄 “66억원 배상하라”
성추행·명예훼손 인정···성폭행은 인정 안돼
27년 전 피해 승소한 캐럴 “모든 여성의 승리”
트럼프 “가장 위대한 마녀사냥” 항소 의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성폭행 민사 소송에서 승소한 작가 E.진 캐럴(가운데)이 9일(현지시간)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최초의 성범죄자’가 됐다. 여성 작가에 대한 성추행 및 명예훼손 혐의로 500만달러(약 66억원)를 배상하라는 법원 평결이 나온 것이다. 그동안 10여건의 성폭력 관련 소송을 당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2024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대선주자이기도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리스크가 더욱 심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법원, 트럼프 성폭력 혐의 인정…온갖 성추문에도 처벌 피해온 트럼프, 첫 철퇴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9일(현지시간) 패션잡지 <엘르>의 칼럼니스트였던 E. 진 캐럴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에게 500만달러를 배상할 것을 평결했다. 성폭력과 폭행 관련 피해보상금 200만달러와 징벌적 배상금 2만달러,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피해보상금 270만달러와 징벌적 배상금 28만달러를 합한 금액이다.

남성 6명, 여성 3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심리 개시 이후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만장일치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법적 책임을 묻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동안 공판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트럼프 측이 캐럴의 주장에 대해 ‘반트럼프’ 음모론까지 제기했지만, 배심원단은 캐럴이 제시한 증거가 더 설득력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배심원단은 “(트럼프는) 타인의 권리를 고의로 무자비하게 무시하는 등 악의적으로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캐럴은 1996년 뉴욕 맨해튼의 백화점 탈의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폭행을 했다고 2019년 회고록을 통해 폭로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회고록 판매를 노린 조작된 이야기”라고 주장하고 “그녀는 내 타입이 아니다” 등의 발언까지 하자 캐럴은 명예훼손과 폭행에 대한 민사소송을 차례로 제기했다. 캐럴이 27년 전 성폭력 사건을 법정까지 가져갈 수 있었던 근거는 뉴욕주가 지난해 11월 공소시효가 지난 성범죄도 1년 간 한시적으로 고발할 수 있도록 한 성인생존자법이었다.

배심원단은 캐럴이 제기한 성폭행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성추행(성적 접촉)과 폭행은 있었다고 판단했다. 뉴욕주 법률은 상대의 동의 없이 물리적 힘을 가해 성적이거나 은밀한 부위를 접촉하는 것을 성적접촉으로 정의한다.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10여명이 성폭력과 성범죄를 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번 사건은 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애초 도덕성 기대 없기에 지지율에도 타격 없는 ‘트럼프의 역반응 법칙’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리던 순간 고개를 끄덕인 캐럴은 법원 문을 나서면서 환하게 웃었다. 캐럴은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나는 내 이름을 회복하고 내 삶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오늘 전 세계가 진실을 알게 됐다. 이번 승리는 나만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이들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모든 여성을 위한 승리”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캐럴이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상세하게 증언했으며 ‘미투 운동’에 영감을 받아 “성폭력 문화를 바꾸기 위해” 소송을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측 변호인이 실제 성추행을 당했다면 그때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냐고 묻자 “나는 소리지르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싸우고 있었다. 소리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공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배심원단 평결 직후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를 통해 “나는 이 여성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녀사냥의 연속”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그는 폭스뉴스 디지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빌) 클린턴이 임명한 판사에 의해 매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평결은 이미 기소된 ‘성추문 입막음 의혹’ 관련 재판은 물론 기밀문서 유출 의혹, 2020년 대선 조지아주 개표 결과 개입 의혹, 의사당 폭동사태 등 각종 법적 소송에 휘말려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행보에 추가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부동층 유권자들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기소된 데다 법원이 인증한 최초의 성범죄자 타이틀까지 얻게 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더욱더 염증을 느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유권자들의 트럼프의 도덕성에 대한 기대가 워낙 바닥에 떨어진 상태인 만큼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이를 “트럼프의 역반응(Inverse Reactions) 법칙”이라고 불렀다. 트럼프를 둘러싼 추문이 워낙 많다보니 이젠 그것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ABC방송의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6%포인트로 앞서고 있다. 악시오스는 “트럼프가 체포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그들 중 18%는 놀랍게도 여전히 바이든보다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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