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내 친구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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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운다.
언제부턴가 라디오를 친구처럼 두기 시작했다.
라디오 음악 속에도 내가 있다.
이처럼 라디오 속에는 항상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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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수다스러운 친구
청취자들 사연은 내 이야기
시대의 아픔·기쁨도 함께해
말 걸어보고 친구 삼아보자
삶 풍성해지고 생활에 활력
펑펑 운다. 눈물이 폭포수다. 뺨이 따가울 정도다. 오십 중반을 넘어 이렇게 울 줄 몰랐다. 닳고 닳아 감정이 메마른 줄 알았다. 그래서 우는데 기쁘다. 잊힐 뻔했던 감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울면서 기쁘기는 처음이다. 메마른 감성에 이렇게 단비를 준 것은 바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이다. 아침밥을 먹다가 수저를 놓고 멍하니 듣는다. 그러다가 운다.
저녁밥을 먹는다. 오늘 따라 더 맛있다. 먹는 게 신난다. 어깨가 들썩인다. 숟가락질이 리듬을 탄다. 이 또한 라디오 때문이다. 경쾌한 록 음악이 저녁밥을 맛깔나게 한다. 밥알을 춤추게 한다.
언제부턴가 라디오를 친구처럼 두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친구다. 만나면 좋고, 신나고. 그래서 또 보고 싶은 친구 말이다. 가슴 짠하게 만드는 사연부터 배꼽 잡는 이야기까지 우리네 삶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내 이야기 같다. 옆집 아줌마 사연 같다. 그래서 더 몰입된다.
음악은 또 어떤가? 최신 유행가부터 추억 어린 옛날 노래까지. 이뿐만 아니라 인생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클래식·국악까지. 뉴스는 당연하고 시사평론까지 곁들인다. 그야말로 라디오는 수다스러운 친구다. 그런데 그 수다는 삶의 피로를 씻어주고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 늘 곁에서 떠들어대는 기분 좋은 친구처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주 5일 이상 스마트폰 이용률은 90.1%며, TV 이용률은 75.5%, 라디오는 6.6%로 나타났다. 해마다 라디오 이용률은 떨어지고 있다.
아마도 옛날 방식의 라디오 단말기 사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디오도 스마트폰으로 듣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 라디오를 검색하면 많은 라디오 애플리케이션(앱)이 나온다. 스마트폰에서 편리하게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라디오는 이용률에 비해 매체 신뢰도가 꽤 높다. 보도에 따르면 전체 언론 매체별 신뢰도는 TV·신문·라디오·인터넷·소셜미디어 순으로 나타났다. TV가 50.9%, 신문 33.2%, 라디오 32.6%다. 라디오가 이용률에 비해 신뢰도가 이렇게 높은 이유는 청취자의 사연들이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아서 매체 친밀도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또 시사프로그램에서도 기자나 피디(PD)의 시선으로 걸러진 정보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 중심에 있는 당사자를 전화로 연결하거나 스튜디오에 불러내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해당 사안에 대해 청취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선택권을 주기 때문일 거다.
라디오의 온갖 사연들 속에서 나를 보게 된다. 가족이 겪은 슬픔과 기쁨, 첫사랑의 가슴 떨림, 군 생활의 아련한 추억 등 청취자들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다. 라디오 음악 속에도 내가 있다.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의 내가 있고, 가슴 저린 시련의 아픔도 소환된다. 환희와 벅찬 순간도 라디오 음악과 함께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 뉴스 한편에도 늘 내가 서 있다. 시대의 아픔과 기쁨을 라디오와 함께했다. 이처럼 라디오 속에는 항상 내가 있다. 내가 살아온 과거, 지금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까지. 그래서 반성하고 다짐하고 설계하게 된다.
라디오에는 눈물 콧물 나게 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지칠 때 위로를 준다. 삶의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적극적으로 이용해보자. 라디오에 말을 걸어보자. 라디오를 친구 삼아보자. 라디오를 늘 곁에 두면 삶이 풍성해진다. 그래서 생활에 윤기가 난다. 덩달아 나도 반짝인다.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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