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기온에 과수 치명상…농가 “올해 수확 사실상 포기”
나주, 배 착과 적고 기형 많아
경기, 자두·매실 등까지 확산
상주 ‘캠벨얼리’ 포도 피해 커
“내년 정상농사도 장담 힘들어”
전국 농촌 곳곳에서 과수 저온피해로 비상이 걸렸다. 3월 때 이른 고온현상으로 꽃이 핀 상태에서 4월 상순과 하순에 지역별로 영하권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피해가 커졌다. 과수농가는 착과가 어려워지면서 수확기 생산량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했다.
◆ 전남 배농가, 착과율 예년의 10∼20% 수준=“10년 배농사 짓는 동안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배나무 한그루를 다 뒤져봐도 착과된 배가 한두개 있을까 말까 한데 그나마도 기형과가 대부분이에요. 올해 수확은 그냥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남 나주시에 따르면 이 지역 배는 4월4일 이후에 인공수분한 과원에서 저온에 따른 착과 불량이 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인공수분 후 정상적인 수정이 이뤄지려면 15∼25℃ 상온에서 48∼72시간이 지나야 하는데 올해는 인공수분 후 수정이 완료되기 전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저온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배농가 김병문씨(56·나주시 금천면)는 “원래 한자리에 배가 5∼6개 달리면 그중 가장 좋은 것 하나만 남기고 다 솎아내는데 올해는 한개가 달릴까 말까 하는 정도”라면서 “9256㎡(2800평) 배밭이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착과가 예년의 10∼20% 수준밖에 안된 밭이 태반이다. 시는 저온피해를 입은 농가가 전체 농가의 80%를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수치는 수확기가 가까워져야 알 수 있겠지만 수확량도 예년의 60∼70%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북도 저온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전북도에 따르면 4월25일 기준 13개 시·군에서 1640농가에 1316.7㏊의 저온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군별로는 장수가 451.3㏊로 피해가 가장 컸고, 무주 445㏊, 임실 72.8㏊, 진안 71.7㏊가 그 뒤를 이었다. 작물별로는 사과가 909.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 경기, 16개 시·군 880㏊에 피해 발생=경기지역도 과수농가를 중심으로 저온피해가 확대되고 있다. 배·복숭아에서 시작한 저온피해는 사과·포도로 확산했고 최근 들어 자두·블루베리·매실 등에도 피해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기도에 따르면 4월28일 기준으로 경기지역 과수 저온피해 면적은 16개 시·군에서 880㏊, 918농가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품목별로는 배 723㏊(727농가), 복숭아 101.3㏊(102농가), 사과 46.9㏊(66농가) 등에 집중됐다. 지역별로는 안성이 341.8㏊(312농가)로 가장 컸고 이천 130.7㏊(129농가), 남양주 107.8㏊(115농가), 여주 85.6㏊(74농가), 평택 78㏊(80농가) 순이었다.
안성에서 7903㎡(2390평) 규모로 배농사를 짓는 박인재씨(54·금광면 개산리)는 “3월말과 4월초에 저온피해가 나타난 후 남은 꽃이라도 열매를 맺게 하려고 인공수정을 3회씩이나 했는데도 나무마다 배 열매를 찾기가 어렵다”면서 “예년 같으면 한 나무에 300개가량 열매가 달려야 하는데 올해는 30개도 많이 달린 것이어서 90% 이상 피해를 입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2일 홍경래 경기농협본부장 등과 안성지역 배 과수원을 둘러본 안성구 안성원예농협 조합장은 “요즘 안성지역 배농가를 다녀보면 배나무에 가지는 무성한데 열매가 달린 게 별로 없다”며 “1차 피해 조사가 마무리됐지만 피해 규모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원지역에서는 사과 저온피해가 심각하다. 강원도농업기술원과 영월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께 영월읍·주천면·산솔면 내 사과 <후지> 품종 꽃눈의 40%가량이 저온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 경북, 포도농가 사상 최악 저온피해=“이런 극심한 저온피해는 생전 처음이에요. 앞으로 2∼3년 생계가 막막합니다.”
경북 상주지역 포도농가는 사상 최악의 저온·서리 피해로 신음했다.
귀농 9년차 <샤인머스캣> 포도 재배농가 신희용씨(45·화동면 평산리)는 최근 1만3223㎡(4000평) 과원에서 저온피해를 입은 5년생 나무 전부를 뽑아내야 했다. 신씨는 “올해 유목을 심는다 해도 적어도 3년간은 소득이 없어 살 길이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웃 농가 이종헌씨(59)는 <샤인머스캣> 포도 과원 1만3223㎡(4000평) 가운데 60%에 달하는 8264㎡(2500평)에서 저온피해를 봤다. 이씨는 “피해 나무는 내년에도 정상 농사를 장담할 수 없어 더 큰 문제”라며 “그동안 시설 투자한 빚도 다 갚지 못했는데 2년간 소득 절반이 줄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며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평산리를 포함한 화동·모동면 일대엔 4월27일 새벽 기온이 영하 3℃를 기록하며 포도나무에 치명상을 입혔다.
피해는 3∼4일 지난 5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한창 파릇하게 돋던 새순이 모두 말라 죽어버렸다.
상주시가 파악한 피해 포도농가수와 면적(잠정치)은 8일 기준 1457농가 832㏊에 달한다.
특히 <캠벨얼리>는 상주 전체 재배면적 873㏊ 가운데 571㏊(65%)에서 저온·서리 피해가 발생할 정도로 극심했다.
한편 4월 이상기후에 따른 과수 저온·우박·서리 피해 면적은 시간이 갈수록 확산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3일 기준(잠정치) 피해 면적은 3522㏊로, 저온피해(4월초) 1732㏊, 서리피해(4월말) 1784㏊에 이른다. 품목별로는 사과 1108㏊, 포도 1000㏊, 자두 528.9㏊, 배 69㏊다.
울산지역도 배와 단감 농가들이 저온피해를 입어 대책을 호소했다.
NH농협손해보험 울산총국에 따르면 울산과 울주군에서 4월말까지 저온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건수는 총 507건(피해 면적 371.8㏊)에 이른다. 이는 전체 재해보험 가입농가의 76%에 해당한다. 작목별로 보면 배가 471건으로 가장 많고, 단감 17건, 사과 11건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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