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패소 트럼프, 66억 배상해야…대권 사법리스크 현실화

미 법원 ”성추행·명예훼손 500만달러 배상하라” 평결

9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한 E. 진 캐럴(가운데)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76) 전 미국 대통령은 여성 작가를 성추행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에 500만달러(약 66억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평결이 나왔다. 2024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성관계 입막음 돈 지급과 관련해 기소된 직후 또 악재가 덮친 것이다.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9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션지 <엘르>의 칼럼니스트였던 E. 진 캐럴(79)에게 500만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남성 6명, 여성 3명의 일반인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캐럴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성추행은 사실로 인정된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배심원단은 성적 학대를 가했다는 증거는 충분하며, 피해자가 상처를 입은 사실도 인정된다고 했다. 뉴욕주 법률은 “성욕 충족을 위해 동의 없이 상대의 성적이거나 은밀한 부위를 건드리는 것”을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성적 접촉’(성추행)으로 규정하고 있다.

배심원단은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올린 성명에서 캐럴의 소송 제기를 “순전한 사기”, “거짓말”이라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는 그동안 10여명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는데, 이번 사건은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된 첫 경우다. 캐럴은 1995년 말 또는 1996년 초 뉴욕의 고급 백화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자 친구 속옷을 고르는 것을 도와달라”며 접근한 뒤 성폭행했다고 2019년에 낸 책에서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원피스 속옷을 입어봐달라고 부탁해 “당신이 입어보라”고 농담하자 자신을 탈의실로 끌어들인 뒤 벽으로 밀치고 몸으로 누르며 성폭행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 여자는 내 타입이 아니다”, “그 여자는 (성폭행을) 즐긴다고 한다”는 등의 반응으로 캐럴의 주장을 반박하며 그를 조롱해왔다. 그는 배상 평결에 대해 ‘트루스 소셜’을 통해 “역대 최대의 마녀사냥의 지속”이라고 반응했다. 또 캐럴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며 항소하겠다고 했다.

캐럴이 주장한 피해 시점은 애초 배상 시효가 지났었다. 하지만 뉴욕주 의회는 ‘미투 운동’ 흐름 속에 지난해 11월부터 1년간 ‘성범죄 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시효가 지난 피해에도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캐럴은 이 법 발효 첫날 소송을 제기했다.

<시엔엔>(CNN)은 심리를 주관한 루이스 캐플런 판사가 법정에서 배심원단에게 장기간 신원을 노출시키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해를 끼칠 가능성을 걱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평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사법 리스크가 연달아 현실화된 것이다. 맨해튼 검찰은 2016년 대선 직전 포르노 배우와의 성관계를 입막음하려고 13만달러를 주면서 회사 장부 등에는 ‘법률 비용’으로 기재한 혐의로 올해 3월30일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그는 4월4일 법원의 기소인부절차에 출석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밖에도 2020년 대선 직후 조지아주 개표 결과 조작을 종용하고, 이듬해 1·6 의사당 난동을 사주하고, 백악관 자료를 무단 반출한 것을 두고도 수사를 받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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