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물 켠 금리산정체계 정비…실효성에 '물음표 가득'
주담대는 '고정형 확대' 원론적 구호에 그쳐
"줄 세우기식 공시로는 한계 명확" 비판도
은행권의 '이자장사'를 비판해 온 금융당국이 금리산정체계를 들여다보겠다는 칼을 빼 들었다. 하지만 칼날은 무디다. 당국이 내놓은 방안은 은행이 취급하는 대출의 금리항목을 세분화해 공시하고, 대출금리 모범규준 개정을 검토하는 정도에 그친다.
소비자들이 체감할 만한 방안으로는 코픽스 연동 신용대출 상품 개발과 취급 확대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가계대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고정형(혼합형) 비중 확대'라는 원론적 계획을 담았을 뿐 구체적 실행 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코픽스 연동 신용대출, 이자 부담 줄일까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실무작업반은 최근까지 코픽스를 기준금리로 하는 신용대출 상품 개발과 취급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신용대출의 85% 이상이 준거금리로 은행채와 CD(양도성 예금증서)금리 등 단기 시장금리를 활용하고 있어 금리 변동 폭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관련기사: 금리 변동폭 적은 신용대출 개발 추진(5월4일)
금융당국은 코픽스 신용대출 상품 개발 필요성을 강조했고, 개발 당사자인 은행권과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내놨다. 주체는 은행이지만 실제로 출시될 가능성이 높고, 출시되면 기존 신용대출 상품에 비해 금리 인하와 안정성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당국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코픽스 신용대출 상품 출시에도 금융 소비자 이자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3월 기준 신규취급액 코픽스 금리는 3.56%를 기록했다. 은행채 6개월물과 1년물 금리는 각각 3.58%, 3.59%(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 8일 기준)로 차이가 크지 않다.
또 일부 은행은 코픽스 연동 신용대출 상품을 이미 운용하고 있다. 하나은행 프리미엄직장인론과 공무원클럽대출, 전문직클럽대출 등은 코픽스를 기준금리로 선택할 수 있다. KB국민은행도 공무원우대대출과 공무원 연금수급권자 신용대출 등에 준거금리를 코픽스로 두고 있다.
가계대출 가운데 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체감도가 낮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4월말 기준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677조4701억원) 가운데 신용대출 비중은 16.2%(109조9314억원), 주택담보대출 75.1%(508조9827억원)다. 주담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주담대는 금액 규모가 신용대출보다 월등히 크고 매달 원리금을 상환하는 만큼 실제 금리 상승으로 인한 대출이자 부담은 주담대가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신용대출 금리 체계 보완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주담대 고정형 확대? 알맹이 없어
반면 이렇게 비중이 큰 주담대를 두고 제도개선 TF가 내놓은 부담 완화 방안으로는 고정금리 비중을 높이고 변동성이 작은 신잔액 코픽스 안내를 강화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마저도 고정금리 비중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들어있지 않다.
국내 주담대 가운데 변동형 상품 비중이 높은 것은 자금조달시장 구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에서는 국내 은행이 MBS(주택저당증권)나 커버드본드 등을 이용한 장기자금조달이 활발하지 않아 은행 수신 만기구조가 짧고, 이로 인해 변동금리 대출이 많다는 분석을 내놨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변동금리 비중, 왜 줄지 않을까(22년 10월3일)
최근에는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으로 시장금리가 급등하면서 변동형이 혼합형(고정+변동) 상품보다 금리가 더 높은 상황이지만 추후 금리가 하향 안정화되면 변동형 금리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변동형 상품을 선택하는 차주가 늘고, 재차 금리가 오르면 이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나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란 의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혼합형 주담대 확대를 위해선 금리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라며 "이를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논의 중이고, 자금조달시장의 구조적 문제 등도 지속적으로 보완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줄세우기' 금리 공시 지적도
당국과 은행들은 금리산정체계 개선 방안으로 은행이 취급하는 대출의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우대금리를 시계열적으로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공시항목을 세분화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또 가산금리 산출에 합리적 사유없이 은행별로 편차가 크거나 적정수준보다 과도하게 계상되는 부분이 있는지를 은행권 전반적으로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필요하면 '대출금리 모범규준 개정'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은행의 금리산정 방식이 국민과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합리적이고 투명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 입장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리산정에 대한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금리산정이 합리적이고 일관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적극 공개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현재 진행 중인 가산금리와 우대금리 산정체계 점검을 꼼꼼히 추진하고 개선 사항이 있으면 신속히 관련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투명하게 금리산정체계를 공개하는 방안 역시 실제 효과로 이어질지는 확신할 수 없잖냐는 게 은행권에서 나오는 볼멘소리다. 비교 공시를 통해 금리 경쟁은 일부 유도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은행별로 큰 차이가 없는 선에서 수렴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시체계를 세분화해도 결국에는 대다수 은행이 비슷한 수준에서 금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 영업에 중요한 예대금리차도 경영진이 정책적으로 자금을 유치한 결과를 담고 있지만 은행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교 공시를 통해 경쟁이 진작될 수도 있겠지만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목적에 부합한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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